세계 콘텐츠 시장에서 "제2의 '오징어게임'"(미국 CNN비즈니스)으로 주목받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어떻게 기획되고 제작됐을까.
24일 본보 취재를 종합하면, 제작진은 자폐 아동에서 세계적 동물학자로 성장한 템플 그랜딘(75) 미국 콜로라도주립대 교수의 삶을 참조해 드라마 속 우영우의 캐릭터를 잡았다.
농장의 가축들을 위해 헌신하는 동물학자로 유명한 그랜딘 교수는 두 살 때 자폐 진단을 받았다. 당시 의사는 "평생을 보호시설에서 있어야 하며 말을 하기도 힘들 것"이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머니와 학교 선생님의 도움 등으로 동물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자신의 재능을 동물들을 위한 연구에서 꽃 피웠다. 농장 가축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그가 설계한 인도주의적 시설은 북미 농장의 60%에 도입됐다. 이런 성과로 그는 2010년 미국 시사주간 타임이 꼽은 '세계 영향력 있는 100인'으로 선정됐다. 그랜딘 교수의 삶은 미국에서 영화와 책으로 제작됐고, 국내에선 그의 삶을 조명하는 연극이 2019년부터 꾸준히 무대에 올랐다.
남들과 다른 그랜딘 교수는 늘 편견을 깼다. 2013년 2월 카우보이 복장을 한 채 '테드' 강단에 올라 '모든 종류의 사고가 필요한 세상'을 주제로 한 강의도 화제를 모았다. "정책과 건설 등 요즘 세상은 너무 추상적인 게 문제"라며 "대부분의 사람이 무시하는 세밀함에 집중하는 자폐적 사고가 세상을 바꾼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20여 분 분량의 영상에서 그랜딘 교수는 양손을 다소 바쁘게 쓰고 억양은 살짝 흥분돼 있지만, 그의 말은 막힘이 없다.
'우영우' 드라마의 자문을 맡은 김병건 나사렛대 유아특수교육과 교수는 한국일보와 전화 통화에서 "공감과 소통에 문제는 있지만 일부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이 특정 분야에서 보이는 높은 집중력, 즉 장점을 중심으로 접근해 부족하거나 도움만 받는 정형화된 자폐인의 틀을 깨고 싶었다"며 "법정에서의 우영우는 그랜딘 교수의 테드 강연 모습을 참고했다"고 말했다. 그랜딘 교수가 현실 속 우영우인 셈이다. 김 교수는 지난해 7월부터 올해 5월까지 문지원 작가와 함께 우영우를 투 트랙으로 접근해 캐릭터를 입체화했다. 우영우가 일상생활을 할 때는 자폐 성향을 좀 더 드러내고, 법정에서 변론할 때는 그의 지능을 극대화하는 방향이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머릿속엔 온통 고래뿐이다. 제작진은 인간과 고래의 유사성에 착안해 연결 고리를 맞췄다. 높은 지능과 고도화된 사회성이다. 여기에 생태계 파괴로 멸종해가는 동물의 현실을 담은 '와일드 원즈'의 저자인 존 무알렘이 미국 한 일간지에 기고한 칼럼 '고래도 자폐가 있습니까' 등을 바탕으로 고래를 통해 자폐인의 희망을 담았다. 해양동물 수의사인 이영란 오산대 교수는 "드라마에 고래 사냥법 중 가장 유명한 건 '새끼부터 죽이기'와 '연약한 새끼에게 작살을 던지면 어미가 절대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는 대사가 나오는 데 실제 어부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맞는 얘기"라며 "범고래가 가족 단위로 움직이며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두 바퀴를 돈 뒤 머리를 세 번 흔드는 식의 행동을 보이는데 사람과 닮은 구석이 있다"고 말했다. '우영우' 제작 관계자는 "작가가 드라마에 고래를 소재로 활용한 뒤 우영우의 로펌 이름이 원래 다른 이름에서 '한바다'로 바뀌었다"고 귀띔했다. 이렇게 펼쳐진 '바다'에서 우영우는 고래처럼 유영하며 꿈을 이뤄간다.
드라마 촬영은 이달 중순 끝났지만 컴퓨터그래픽(CG)팀은 요즘 제일 바쁘다. 촬영한 영상에 CG로 고래 이미지를 곳곳에 입혀야 하기 때문이다. '우영우' CG 작업을 총괄하는 황진혜 슈퍼바이저는 본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우영우가 설명할 때 등장하는 고래는 귀여움을 살리기 위해 종이 모형으로 먼저 만든 뒤 그 질감을 살렸다"며 "특히 영우와 감정을 교류하는 모습을 위해 고래의 눈동자에 신경 써 작업했다"고 말했다.
문 작가는 '우영우' 대본 집필에 2년여의 세월을 쏟았다. '우영우' 제작사인 에이스토리의 고위 관계자는 "영화 '증인'(2019)을 계기로 이 드라마를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증인'은 살인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자폐 장애인 소녀 지우(김향기)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다. '증인'에서 지우는 "나는 아마 변호사는 되지 못할 거야. 자폐가 있으니까"라고 말하지만 4년 후 문 작가는 우영우를 통해 지우의 꿈을 이룬다.
'우영우'는 애초 업계와 시청자의 기대작은 아니었다. 흥행이 검증되지 않았던 문 작가의 드라마 데뷔작인 데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선뜻 출연하겠다고 나서는 배우도 없었다. 처음엔 박은빈도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고 어느 하나 거슬리지 않고 잘 해낼 수 있을지 두려워" 섭외를 여러 번 고사했다. 이 드라마 대신 KBS '연모'(2021)를 택한 박은빈을 우영우로 카메라 앞에 세우기 위해 제작진은 꼬박 1년 넘게 기다렸다. 이런 우여곡절을 딛고 '우영우'는 흥행 대역전극을 만들어 내고 있다. 지난달 29일 0.9%로 시작한 시청률은 21일 13.1%(8회)로 14배 이상 껑충 뛰었고 이 뜨거운 열기는 넷플릭스를 통해 아시아를 중심으로 북미 등 해외로 빠르게 옮겨 가는 추세다. 스타 작가, 한류 배우, 멜로 등 드라마 흥행 공식을 따르지 않은 '우영우'가 일군 이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