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 파업 사태는 노조와 사측 모두에 상처만 남긴 51일이었다. 양측은 22일 교섭 협상에 잠정 합의했지만 물리적 충돌 없이 파업만 끝냈을 뿐, ‘손해배상 소송’과 실직 노동자들의 ‘고용 승계’ 등 핵심 쟁점에서는 절충점을 찾지 못해 갈등의 불씨를 남겼다.
대우조선 하청업체 노사 갈등은 2021년 6월 시작된 노사교섭이 1년 넘도록 해결을 보지 못하면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결국 올해 6월 2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1통영ㆍ고성 하청지회는 대우조선 협력사를 상대로 △노조전임자 인정 △노조사무실 지급 △임금 30% 인상 △상여금 300% 인상 등을 요구하며 전면파업에 들어갔다.
그래도 교섭에 진척이 없자 같은 달 22일부터 ‘선박 점거 농성’이란 최고 수위 투쟁으로 맞섰다. 6명이 조선소 1독(dock) 원유운반선 탱크 20m 난간에 올라가 농성을 하고, 한 명은 운반선 탱크 바닥에 만든 가로ㆍ세로ㆍ높이 각 1m 크기 철제 구조물에 스스로를 가두는 이른바 ‘옥쇄투쟁’에 돌입한 것이다.
선박 점거의 타격은 컸다. 대우조선은 창립 41년 만에 처음으로 배를 물에 띄우는 진수 작업을 중단해야 했다. 관련 공정이 연쇄 정체되면서 급기야 비상경영을 선포했다. 작업 차질은 초과근무 및 특근 축소, 야간작업 중단 등 근무시간 조정에 따른 급여 삭감으로 이어졌고, 불만이 누적된 원청 직원과 하청 직원 간 ‘노노(勞勞)갈등’으로 번졌다. 윤석열 정부도 때맞춰 법과 원칙을 앞세워 하청노조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윤 대통령은 19일 “기다릴 만큼 기다리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며 공권력 투입 가능성을 내비쳤다. 경찰도 조선소 주변 배치 인력을 크게 확충하면서 강제 진압이 임박했다는 우려가 나왔으나, 이날 합의로 ‘파국’은 겨우 막을 수 있었다.
합의 결과를 놓고 굳이 우열을 가리자면, 노조 측이 대폭 양보한 셈이 됐다. 노조는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지만, 막대한 매출 손실 등 모처럼 찾아온 조선업 호황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비판 여론이 커지면서 코너로 몰렸다. 여기에 곧 다가올 하계 휴가와 경찰의 노조 간부 출석요구 기한까지 만료되는 등 악재가 쌓였다.
고심하던 노조는 당초 임금 인상 요구안(30%)에서 크게 후퇴한 4.5%를 받아들였다. 손배소 취하를 노린 ‘통 큰’ 양보였지만 얻어낸 건 없었다. 사측은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취하를 하더라도 부당노동행위가 재발할 경우 이번 사태를 소급 적용하는 단서를 다는 등 안전장치를 끝까지 밀어붙였다. 홍지욱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워낙 의견 차이가 커 우선 사태 해결이 중요하다는 판단 아래 민ㆍ형사 면책 부분은 협상 과제로 남겨놨다”고 말했다. 한 조합원은 “50일 동안 물질적 이득은 고사하고 노조 이미지와 여론만 악화했다”고 불평했다.
사측도 웃을 처지는 아니다. 당장 선박 납기 지연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 이번 파업으로 원청 대우조선이 입은 피해는 7,000억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납기 지연에 따른 자체배상금은 별도다. 대우조선에 따르면 1독에서 건조 중인 호선은 모두 4척으로 인도가 무기한 연기되고 있다. 2독과 플로팅 독, 안벽에 계류된 일부 선박들도 1~4주 지연 영향을 받고 있다. 노사는 이르면 23일부터 생산을 재개할 방침이나, 시설점검 기간 등을 감안하면 더 미뤄질 수 있다.
봉합되지 않은 손배소 쟁점의 폭발력도 크다. 노사는 휴가 기간이 끝난 뒤 이 문제를 재논의하기로 했지만, 작은 접점조차 찾지 못해 공전만 거듭할 가능성이 크다.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 사태도 지금껏 손배소가 마무리되지 않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노노 갈등 역시 잠복돼 있다. 원청노조는 전날 금속노조 탈퇴 찬반 투표를 강행했다. 이날 부정투표 잡음이 일어 탈퇴 여부 결정이 연기됐으나 노조 내부 분열은 이미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게다가 노사 합의에 상관없이 농성 조합원들을 경찰이 수사하기로 해 노조 대응이 대정부 투쟁으로 방향을 틀 여지도 없지 않다. 김병수 경남경찰청장은 “건강에 이상이 있는 조합원들은 치료를 먼저 받게 하겠지만, 법과 절차에 따라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