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로 한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절룩였지만 익숙해보이는 걸음걸이였다. 그는 흔한 증상으로 찾아왔다. "오른발이 저리고 아픕니다." 간단한 환자라고 생각했다. 아픈 곳을 보여달라고 부탁하자 그는 발을 내밀어 바지 자락을 걷었다. 옷감 아래로 나무 뼈대가 드러났다. 저 다리가 아프다고? 그는 흔한 환자가 아니었다.
"의족이 아픕니까?" 혹여나 의사를 골탕먹이려는 환자일까 생각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진지하게 고통스러웠다. "정말 많이 아파서 참다가 왔습니다." 연이어 그가 오른쪽 신발을 벗었다. 목각으로 된 마네킹 발이었다. 그의 동작은 양말을 신지 않았다는 것이 어색할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발가락 없는 뭉툭한 나무발은 고통의 증거였다. 손톱으로 긁은 자국이 나무 섬유를 파고들어가고 있었다. 그는 정확히 그 자리를 한 번 더 긁었다.
"휴, 너무 저려서요. 설명드리자면 20년 전 사고로 다리를 잃었습니다. 수술은 잘 되었고 후유증도 크지 않았습니다. 의족이 잘 맞았고 보행도 잘 되었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자세가 안 좋았던지 허리 디스크가 터졌습니다. 하필 오른쪽으로 가는 신경이 눌렸지요. 그런데 오른쪽 다리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의족이 아프기 시작한 겁니다. 정말 심각하게 아파서 끙끙대며 의족을 팔로 감싸안고 잠들었습니다. 또 신기하게 긁으면 시원합니다. 가끔 정말 우습더라고요."
그는 아직도 신기하다는 듯 살짝 웃었다.
"의족을 제거해도 아픕니까?"
"빼면 더 아픕니다. 어딘가 더 고통스러운데, 허공이 아파 해결할 수 없는 느낌입니다. 차라리 연결해두고 의족을 달래주면 조금 나아졌습니다. 담당 선생님도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고 했습니다. 여하간 통증이 있으니 방치할 수 없었습니다. 의족을 안 아프게 하려고 허리 수술을 받았습니다. 한동안 괜찮다가 최근에 재발했습니다. 이전보다 더 격렬하게 아픕니다. 진통제를 먹는데 해결되지 않으면 병원에서 주사를 맞습니다."
"과연 그렇군요."
"평소 안 가던 병원에 가면 의사들도 신기해합니다. 번거로워서 잘 안 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너무 아파서 응급실에 왔습니다. 진단서와 MRI까지 다 들고 왔습니다."
자료는 그가 말한 그대로였다. 과연 존재하지 않는 다리가 아플 만했다. 사실 손으로 직접 긁어댄 나무발만큼 더 명확한 증거가 없었다. 통증은 실재했던 것이다. 뇌는 성장하면서 자신의 몸통과 사지가 존재하는 공간을 강력히 인식해서 설정한다. 외부의 공격에 즉시 반응하거나 동작을 수월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다. 사지를 잃어버렸을 때의 환상통도 그 때문에 발생한다. 뇌는 그 공간에 자신의 몸이 존재한다고 끊임없이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론상으로는 맞았지만 실제 목격하니 기묘했다. 문제는 허리에 있었고 통증은 나무로 된 다리에서 발생했다. 어딘가의 통증은 실재했기에 내 것이 아닌 사지가 내 것처럼 아파야만 했다. 과연 인간의 신경은 집요하고 성실하며 맹목적이다. 그래서 자신의 일부였던 존재를 상실했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우리의 신경 회로가 남아 있는 한 통증은 사라질 수 없다. 이미 대상이 무형의 존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증명하던 그는 진통제를 맞기 위해 떠났다. 오른발을 디딜 때마다 표정이 찡그러져 흡사 피와 살이 있는 자신의 발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