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영부인 “아이가 유모차에서 죽지 않도록”… 미 의회에 무기 지원 호소

입력
2022.07.21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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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방문 중 의회 연설… 네 살배기 리사 사연 소개
"아이들이 학교로 돌아가게 해 달라" 무기 지원 호소

“리사는 고작 네 살이다. 이제는 우리와 함께 있지 않다. 러시아의 로켓 공격에 하늘로 떠났다. 엄마는 심각한 부상을 당했는데 누구도 그에게 딸이 죽었다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부인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가 화면에 영상을 띄우자 미국 의회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어린 소녀가 아장아장 걸음으로 자기 키보다 큰 유모차를 밀면서 엄마와 마주보고 해맑게 웃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우크라이나 서부 도시 빈니차에 살고 있던 리사는 지난 14일 이 영상을 찍고 1시간 뒤 러시아군 미사일에 숨졌다. 엄마와 언어치료센터에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엄마는 다리가 절단되는 부상을 입고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미국을 방문한 젤렌스카 여사는 20일(현지시간) 의사당 방문자센터 강당에서 의원들을 상대로 12분가량 연설했다. 네 살배기 리사를 비롯해 러시아군 폭격에 사망한 민간인 사례를 소개하면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평화로운 도시에 살던 평화로운 사람들을 사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러시아는 이런 사실을 절대 보도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공개한다”며 “우리가 도발하지도 않았는데 내 조국을 대상으로 침략적 테러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젤렌스카 여사는 미국의 아낌없는 지원에 사의를 표한 뒤 “다른 나라 땅에 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무기가 아니라, 자신의 집을 보호하고 그 집에서 삶을 영위할 권리를 지키기 위한 무기 지원을 희망한다. 어린이들이 유모차에서 죽지 않도록 방공무기 시스템을 지원해 달라”고 호소했다.

아울러 “수백만 우크라이나 엄마들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 제 아들이 과연 가을에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면서 “그러나 우리가 만약 방공무기 시스템이 있다면 그 질문에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답변은 이 자리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모든 아빠, 엄마가 아이에게 ‘공습이나 로켓 공격은 없으니 평화롭게 잠들라’고 말할 수 있기를 원할 뿐인데,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인가”라면서 거듭 지원을 촉구했다.

젤렌스카 여사가 연설을 마치자 의원들은 기립 박수로 화답했다. 연설을 주최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러시아군이 여성과 소녀들을 잔인하게 대우했다는 끔찍한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러시아의 강간, 납치 등에 대한 충분한 증거를 갖고 있다. 이것은 전쟁범죄다”라며 우크라이나와 연대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젤렌스카 여사는 의회 방문에 앞서 전날에는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부인 질 바이든 여사와 회담했다. 지난 5월 초 바이든 여사가 우크라이나를 전격적으로 방문해 첫 만남을 가진 지 두 달 만이다.

젤렌스카 여사는 토니 블링컨 미장관과 서맨사 파워 미 국제개발처장을 각각 만나기도 했다. 국무부는 우크라이나 승리를 위한 미국의 지원과 전후 우크라이나 재건 지원을 약속했고, 국제개발처는 인도적 위기 해결을 위해 수십억 달러를 원조했다.

김표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