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문화 무차별 표절...K컬처의 흑역사

입력
2022.07.2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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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의 그늘, 표절 논란] ②덮고 갈 수 없는 일본 베끼기

지난달 유희열이 자신의 곡 ‘아주 사적인 밤’이 일본 출신의 세계적인 작곡가 사카모토 류이치의 ‘아쿠아’와 유사하다는 점을 인정하자 후속 ‘고발’이 잇따랐다. 2002년 성시경에게 준 ‘해피 버스데이 투 유’는 일본 그룹 안전지대 멤버인 다마키 고지의 동명 곡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고, 그가 작곡하고 가수 이승환이 1997년 발표한 ‘가족’은 일본 가수 안리의 곡과 닮았다는 말을 듣는다. 유희열의 1인 프로젝트 밴드 토이의 6집에 수록된 ‘나는 달’의 도입부는 일본 밴드 쿠루리의 곡과 나란히 비교된다. 유희열 곡을 표절이라고 단정하기 어렵지만 공교롭게도 모두 일본 음악가의 곡과 관련한 의혹이다.

유희열 논란과 별도로 일본 곡을 표절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는 국내 가요는 수없이 많다. 대다수는 일본 대중음악 수입이 전면 금지됐던 1990년대 이전에 발표된 곡들이다. 일본 곡을 리메이크 수준으로 베끼거나 표절을 교묘하게 피해 도용하는 관행은 일본 문화가 개방된 1990년대 후반 이후 일본 가요의 정식 리메이크가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계속됐다. 당시의 풍경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김민종과 룰라의 곡이다. 배우 겸 가수 김민종은 1996년 작곡가 서영진에게 받은 ‘귀천도애’가 일본 밴드 튜브의 곡을 표절한 것으로 밝혀져 한동안 음악 활동을 중단했고, 같은 해 룰라는 ‘천상유애’가 일본 그룹 닌자의 곡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으며 앨범 홍보 활동을 멈췄다.

일본 모방은 문화 전반에 만연했다. “1960~70년대 영화 시나리오 작업은 일본 시나리오의 번안 작업이었다”는 원로 영화인의 증언처럼 당시 국내 영화계엔 염치 없는 베끼기가 일상적이었다. 실제로 이형표 감독의 ‘명동에 밤이 오면’(1964)은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1960)의 기본 플롯은 물론, 장면들 순서, 미장센, 대사, 인물의 동선까지 복사하듯 표절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비판을 받았다. 1999년 방영된 장동건 김현주 주연의 드라마 ‘청춘’은 일본 드라마 ‘러브 제너레이션’을 표절했다는 의혹에 휩싸이며 조기 종영되기도 했다.

TV 예능 프로그램도 표절 시비는 일상다반사였다. KBS1 ‘전국노래자랑’은 NHK ‘젠코쿠 노도지만’을, KBS2 ‘TV는 사랑을 싣고’는 후지TV ‘헤이세이 조연담의’를, KBS2 ‘퀴즈쇼 진품명품’은 TV도쿄 ‘운수대통! 무엇이든 감정단’과 유사하다는 의혹을 받았다. 문학계도 예외는 아니다. 작가 신경숙은 비교적 최근인 2015년 단편 ‘전설’에서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일부 표절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수년간 활동을 중단했다. 신현준 성공회대 교수는 “특히 1980~1990년대에는 대중음악뿐 아니라 문화, 사회, 산업 전반에서 일본을 모방했다”며 “대중이 (일본의 영향을 알았든 몰랐든) 일본을 모방한 제품을 환영했고 실제로 잘 팔렸기에 계속 이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K팝이 중국 등 다른 나라들의 모방과 표절로 골치를 앓고 있지만 과거에는 우리가 노골적인 방식으로 일본 문화를 모방한 흑역사를 갖고 있는 것이다. 최규성 대중음악평론가는 “대중음악의 경우 1960년대 일본 곡 표절이 특히 심했는데 일제강점기 영향으로 비슷한 정서가 있어 통하는 부분이 있었다”며 “문화 교류가 단절됐던 시기에 무차별로 가져다 쓴 경향이 있고, 심지어 그런 행위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유희열을 두고 표절 의혹 논란이 커진 데는 이런 흑역사가 젊은 세대에게 뒤늦게 알려진 것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 온라인상에는 "이런 곡도 표절이었냐"며 배신감을 토로하는 글들이 이어진다.

이에 대해 일본 문화 모방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본이 미국이나 유럽 문화를 모방하며 자국만의 것을 만들어냈듯 우리나라 역시 미국과 유럽, 일본 문화를 함께 받아들이며 성장했다는 것이다. 한 가요기획사 대표는 “일본 음악도 미국과 영국의 팝 음악을 많이 모방하며 자신들만의 음악을 만들어갔다”며 “우리나라에만 있는 문제는 아니다”고 주장했다.

대중음악의 흑역사를 공론화해 재평가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문화 모방 문제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해서 표절 작곡자를 '레전드'로 떠받드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가짜 레전드'를 만들고 방관해왔기 때문에 논란이 커진 측면이 있다. 일본문화 모방이 긍정적 역할을 한 점을 인정하기 위해서라도 흑역사를 공론화해 균형감 있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