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정부가 발표한 '반도체 관련 인재 양성방안'에 담긴 신규 수요 인력 예측치는 같은 기관에서 조사한 것인데도 불과 1년 사이 8배나 불어났다. 향후 반도체 산업이 크게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에 따른 것이지만, 들쭉날쭉한 '고무줄 수치 전망'으로 인력이 과잉 공급되면 피해는 학생들에게 돌아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정부가 발표한 반도체 인재 양성 목표는 10년간 15만 명이다. 이는 지난해 5월 K반도체 전략에서 제시한 10년간 3만6,000명 보다 4배 이상 급증한 수치다. K반도체 전략과 이번 반도체 인재 양성방안은 모두 한국반도체산업협회의 인력 수요 전망치를 기반으로 짜여졌다.
그런데 지난해 1,510명이었던 연평균 부족 인원이 올해 방안에는 1만2,700명으로 8배나 뛰었다. 정부의 산업기술인력실태조사를 보면 최근 5년간 반도체 분야 인력 증가율은 2.6~4.6% 수준이다. 그런데 한국반도체산업협회가 추산한 향후 반도체 산업 인력 전망은 연평균 5.6%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이에 대해 "지난해 발표한 인재 양성 목표치 3만6,000명은 정부 재정 지원으로 수혜를 받는 인원을 단순 합산한 것"이라며 "이번에는 초과 수요 12만7,000명을 어떻게 공급할 지에 대한 종합적인 공급 목표치를 제시했기 때문에 규모에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반도체 인재로 육성되더라도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관련 산업에서 충분한 수요가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 것이란 입장이다.
하지만 교육 현장에서는 보다 정밀한 수요 예측이 선행됐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 정부의 산학연계 사업도 인력 수요 예측에 실패하면서 학생들이 피해를 본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2017년 발표됐던 '프라임 사업'이다. 프라임 사업은 산업연계 교육활성화를 목표로 특정 대학을 지정해 이공계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시행된 정책이다. 종로학원에 따르면 프라임 사업에 선정된 대학의 경쟁률은 2017년 수시 6.8대 1, 정시 4.6대 1이었으나 지난해에는 각각 4.9대 1, 2.1대 1로 뚝 떨어졌다. 지금은 신입생 선발에 어려움을 겪는 대학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에도 소재, 제조, 설계 등 다양한 분야가 있는데, 세부적인 인력 소요를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정원을 늘리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기존 반도체 관련 학과 졸업생 중 반도체 기업 취업률은 7.7% 수준에 그치고 있는데, 이 비율을 더 높이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은 예산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임희성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이날 정부 발표에서 상당수 증설되는 첨단 분야 학과에 대해서는 재정 지원 정책이 나온 게 없다"며 "재정 투입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인재 양성 규모를 키우고, 교원 자격 요건에 대한 규제를 풀면서 '100% 온라인 학사 학위 과정' 등을 만들겠다는 방안이 부실 교육으로 이어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