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시장, 밴드 사운드의 태동에 거는 기대

입력
2022.07.28 10:27

"현업 종사자로서 한국 밴드신이 그리 활성화 돼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나라의 밴드신이 부흥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출연을 결심했죠."

최근 열린 엠넷 '그레이트 서울 인베이전' 제작발표회 당시 밴드 쏜애플의 윤성현이 꺼낸 이야기다.

K팝의 전례없는 부흥 속 국내 밴드 음악의 매력을 조명하기 위해 기획됐다는 프로그램의 취지답게 당시 제작발표회에는 페퍼톤스 쏜애플 소란 적재 노민우 등 국내를 대표하는 굵직한 밴드들이 참석했다. 그리고 이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은 건 '국내 대중음악시장에서 밴드 음악이 설 곳이 부족하다'는 점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밴드음악을 하는 사람은 많지만 대중적으로 밴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설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오는 갈증이 있었다"는 노민우의 말은 현재 한국 대중음악계가 안고 있는 숙제를 대변했다.

'K팝'이 하나의 장르화 되며 전 세계 음악 시장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는 지금이지만, 여전히 K팝이 포함하는 범주가 아이돌 음악이라는 일부 장르에 국한돼 있다는 점은 국내 대중음악계가 넘어야 할 산으로 꾸준히 지적돼 왔다. 탄탄한 실력과 재능 있는 밴드 사운드가 언더, 메이저를 막론하고 자신들만의 음악 세계를 이어오고 있지만 소위 '주류'로 꼽히는 장르와 비교했을 땐 여전히 '마니아' 층에 기대는 음악으로 여겨지고 있는 지금의 상황도 이와 비슷한 범주다.

국내 대중음악 계보를 살펴볼 때, 밴드 음악이 항상 대중적이지 못한 장르로 꼽혀온 것 만은 아니다. 신중현과 엽전들·들국화·시나위·백두산·부활·산울림·넥스트·송골매 등 소위 '거장'으로 불리는 밴드는 물론 90년대를 풍미했던 윤도현 밴드(YB)·자우림·노브레인·크라잉넛 등은 마니아들 사이에서의 인기는 물론 대중적 인기까지 구가하며 밴드의 부흥기를 이끌었다.

하지만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점차 밴드 사운드의 대중적 입지는 좁아졌다. 물론 그 사이 아이돌 밴드를 표방하 FT아일랜드·씨엔블루 등이 인기를 끌었고, 장기하와 얼굴들·잔나비 등이 독특한 음악 스타일로 대중의 사랑을 받기도 했으나 이들의 행보가 밴드신 전반에 걸친 부흥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일각에서는 밴드 음악의 입지 변화의 이유로 달라진 시대상을 꼽기도 한다. 투쟁의 시대, 우리의 목소리를 시원하게 대변해 준 밴드 사운드가 대중적 인기를 끌었던 7~80년대, 급변하는 시대 속 파격적이고 젊음 가득한 목소리에 열광했던 90년대를 지나 시대상이 달라지며 자연스럽게 대중이 선호하는 음악적 장르도 변화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같은 이유가 당시 밴드 사운드가 대중적 인기를 구가했던 이유는 맞지만, 지금 국내 대중음악계에서 좁아진 밴드의 입지를 설명하기엔 어딘가 부족하다.

시간이 지나며 자유와 젊음을 노래하던 밴드들의 이야기도 더욱 다양한 색채들을 입었다. 정형적인 '밴드'의 이미지를 넘어 각 밴드가 추구하는 음악도, 이야기도 한층 풍성하게 진화했다는 이야기다. 이는 지금 K팝 시장이 그토록 외치는 '다양성'과 맞닿은 변화다. 여기에 한층 자유분방하고 신선한 MZ세대의 무드가 더해진 것이 지금의 밴드다. 각 음악 장르에도 이들만의 '때'가 있다. 아이돌 음악, 힙합, 트로트 등이 국내 음악시장을 휩쓸고 지나간 자리, 이제는 조용히 태동을 시작한 밴드 사운드에게 기대를 걸어보고 싶다.

홍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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