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경기에서 최고의 덕목은 단연 ‘에티켓’이다. 2019년 개정 전까지 로열앤드에이션트(R&A)와 미국골프협회(USGA), 대한골프협회(KGA) 골프규칙 제1장은 “코스에서 항상 다른 플레이어를 배려한다”는 에티켓 관련 내용이었다. 골프 룰 자체가 예의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는데도 별도로 ‘코스에서의 예의’라는 장을 두어 다시 한번 상대를 배려하는 골프예의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골프가 어떤 스포츠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한국프로골프협회(KPGA)의 구자철 회장이 갤러리의 경기 관전 에티켓을 지적하려다 구설에 올랐다. “왜 김비오 샷 할 때마다 이 X랄이냐? 비오야, X큐 한번 더해”라는 구 회장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 글 때문이다. 경기 관전 에티켓을 지키지 않은 갤러리의 태도에 문제가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KPGA의 수장이 비속어까지 써 가며 선수에게 욕을 하라고 부추기는 언사는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구 회장은 갤러리의 예의 없는 관전 태도에 감정이 폭발했다고 뒤늦게 사과했지만 그 역시 선수들에 대한 배려를 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 회장은 선수 격려 명목으로 매 대회마다 챔피언조 선수들과 단체 사진 촬영을 한다. 우승을 다투기 위해 티잉 그라운드에 오른 선수들과의 사진 촬영은 분명 선수에 대한 에티켓이 없는 행위다.
선수들은 연습장에서 몸과 마음을 모두 가다듬고 첫 홀 티잉 그라운드에 오른다. 티잉 그라운드에 오르기 전 기도를 하거나, 경기에 집중하기 위한 자기만의 의식을 치른다. 그래서 선수들은 연습장을 떠나 첫 홀로 이동하는 동안 팬들의 사인과 사진 촬영 요청을 모두 거절한다. 이미 경쟁을 위한 ‘전투 모드’로 만든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구 회장은 매 대회마다 사진 촬영을 거르지 않는다. 선수들 격려 명목이라면 모든 선수와 촬영해야겠지만 오직 챔피언조 선수들만 상대한다. 이렇게 찍은 사진을 볼 수 있는 길은 구 회장의 SNS를 통해서 뿐이다. 사실상 개인 SNS를 위한 촬영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지난 3일 아시아드CC 부산오픈에서는 구 회장이 축하 물 세례 후 우승자를 덮어주는 대형 타월을 깔고 앉아 선수 가족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지난달 하나은행 인비테이셔널 최종라운드에선 구 회장이 관람석에 앉아 특정 선수의 이름을 외치며 응원해 해당 선수와 동반 플레이를 한 선수들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구 회장의 돌출 행동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2020년에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후원사들을 향해 “여자프로골프대회만 하는 너네 다 죽었어”라는 이른바 '저격 글'을 올려 빈축을 사기도 했다.
KPGA 코리안투어는 여자 골프에 비해 상대적으로 골프팬들의 관심을 덜 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남자 골프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KPGA 코리안투어의 중흥과 품격을 높이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구 회장의 잇따른 품격을 잃은 언행에 KPGA 코리안투어의 품격까지 동반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투어가 긍정적인 이미지와 높은 품격을 갖추려면 회장을 비롯한 선수들과 갤러리 등 구성원 모두 언행이 정제돼야 한다. 특히 구성원 대표의 행동과 발언은 곧 투어 품격의 바로미터가 된다는 사실을 구 회장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