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주거안정과 삶을 망가뜨리는 전세사기
수백 채의 빌라를 이용해 전세사기를 일삼은 세 모녀가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갭투자로 주택 여러 채를 매입한 후 고의적으로 파산해 전세금을 가로채는 사기꾼들로 인해 피해자가 급증하고 있다. 기획부동산과 마찬가지로 전세사기의 피해자들은 사회경험과 부동산 지식이 부족한 사회초년생과 서민들인데, 이들은 전세금이 거의 전 재산이어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전세사기범을 구속하는 등 정부가 적극 나서고 있지만 아직 근본적인 해결책은 마련되지 않은 것 같다. 점점 더 교묘해지는 전세사기를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을까. 전세사기의 수법과 영향을 살펴보고 제도적 개선방안을 논의해보자.
보통 전세시장에서 임대인과 임차인의 정보격차는 상당히 크다. 이러한 정보의 차이를 정보비대칭(Information Asymmetry)이라 하는데 전세사기 일당은 풍부한 정보를 가지고 법과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피해자들을 농락한다. 이에 반해 정보가 부족한 임차인들은 숨겨진 위험을 확인하지 못한 채 중개인이나 임대인의 말만 믿고 계약을 진행해 피해자가 된다.
예컨대 집주인은 장마철 누수 여부나 층간소음과 같은 물리적인 정보에서부터 대출이나 세금체납 같은 금융세무 정보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임차인은 그 집에 대한 경험이 없으므로 물리적 정보도 부족할 뿐 아니라, 관련 서류를 꼼꼼히 챙긴다 해도 집주인만큼의 정보를 확보하긴 어렵다.
가장 흔한 사기유형은 전세보증금을 기반으로 여러 채를 소유해 시세차익을 노리는 이른바 갭투자형이다. 주택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면 투자매력이 높아지는데, 이때 수요관리를 위해 대출을 조이면 전세보증금을 활용한 갭투자가 성행하게 된다. 문제는 다시 주택가격이 많이 하락하게 되면 매매가가 전세가 밑으로 떨어져 ‘깡통전세’가 된다는 것이다. 이때 일부 집주인들은 전세기간이 끝나도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새로운 임차인을 구해오라고 요구하거나 집의 소유권을 이전해가라고 배짱을 부린다.
어차피 돌려줄 돈도 없을 뿐 아니라 매매가도 전세금보다 낮으므로 소유권이 넘어간다 해도 집주인은 손해볼 일이 없다. 집주인이 처음부터 작정했다면 명백한 사기다. 만약 깡통전세가 될 수 있음을 충분히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집주인이 위와 같이 행동했다면 이 또한 ‘미필적고의(未必的故意)’에 의한 전세사기로 봐야 한다.
수십 채를 소유한 다주택자들이 처음부터 작정하고 벌이는 ‘기획파산’은 훨씬 더 피해가 심각하다. 기획파산은 신축빌라의 분양과정에서 많이 발생한다. 주로 중개인과 공모해 임차인들을 속여 매매가보다 높은 전세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변제능력이 없는 임대사업자에게 소유권을 넘긴 뒤 임대사업자가 고의로 파산하는 수법이다. 결국 임차인들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한 프롭테크기업에서 개발한 사기검색시스템을 통해 분석한 ‘사기의심 거래 분포’를 보면 전세사기는 가격정보가 불충분한 비아파트가 많은 지역에 집중돼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빌라가 많은 화곡동은 2018년 1월 이후 올해 4월까지 전세거래 중 전세가가 매매가 이상인 사례가 2,304건으로 압도적 1위였다. 다른 지역들도 빌라와 다가구주택이 많은 외곽지역이었다. 결국 피해자 대다수가 힘없는 서민층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전세사기가 극도의 사회악인 이유는 피해자들의 인생 전체를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 중 상당수가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는 청년층이므로 전세사기는 전재산을 빼앗아갈 뿐 아니라 심각한 주거불안을 초래한다. 전세사기로 주거위기에 빠지면 이를 극복하느라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기 어렵고, 결국 결혼과 출산도 늦출 수밖에 없는 지경이 된다. 그러므로 전세사기는 피싱이나 기획부동산과는 차원이 다른 사회적 악영향을 야기한다.
또한 전세사기 피해는 단지 임차인들에 그치지 않고 공공기관을 거쳐 국민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사기꾼들은 전세금반환보증제도를 악용해 본인들이 착복한 전세금을 보증기관이 대신 갚도록 함으로써 보증기관의 재무건전성을 악화시킨다. 전세보증의 94%를 감당하고 있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경우 2018년 792억 원에 불과하던 사고금액이 2021년에는 5,790억 원으로 3년 만에 무려 7배 이상 증가했다. 이 중 72%인 4,155억 원은 부채비율이 90%가 넘는 악성이므로 상당수가 전세사기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공공기관인 HUG는 서민주거보호 차원에서 매매가의 100%까지도 전세보증을 발급하는데 사기꾼들은 이를 악용, 피해자를 더욱 확대시킨다. 결과적으로 보증기관은 공공재원을 낭비하고 장기적으로 보증료 상승압박을 받는다. 결국 사기를 피하기 위해 보증조건이 강화된다면 정작 보증이 꼭 필요한 임차인들이 제외될 수도 있으며, 또 다른 피해를 낳게 되는 것이다.
관련 정보의 적극적인 공개는 전세사기 예방의 핵심이다. 우선 다양한 주체들이 정확한 시세를 제공할 수 있도록 공공데이터를 적극 개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원룸 실거래가 자료에는 단층인지 복층인지에 대한 정보가 없는데, 복층 여부에 따라 월세가 뚜렷하게 다르므로 정확한 시세추정이 불가능하다. 보다 상세하고 정확한 데이터를 제공한다면 빅데이터와 AI로 무장한 프롭테크업체들이 ‘적정 전세가’를 제공함으로써 본인의 전세금에 대해 위험을 사전에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전세사기로 의심되는 거래에 대해 실시간으로 분석해 알려줄 수 있는 '사기예방시스템'의 개발이 필요하다. 만약 전세계약을 맺기 전에 이 시스템에 들어가 소유자명, 집주소, 전세금액을 넣었을 때 ‘전세사기 위험’ 경고가 뜬다면 임차인은 계약진행을 중단함으로써 피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사기의심자에 대한 정보 공개도 반드시 필요하다. 상습적인 사기꾼들은 최대 수백 채를 대상으로 전세사기를 일삼는다. 그러므로 이들은 보증기관에서도 특별관리 대상이다. 적어도 계약당사자들에게는 이들의 신상을 공개해 피해가 확산되는 것을 막을 방법을 찾아야한다.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지금처럼 소극적으로 대처한다면 피해자들의 피눈물은 계속될 것이다.
제도적인 허점도 시급히 보완해야 한다. 법무부에서 제공하는 '주택임대차 표준계약서'를 보면, ‘미납 국세·지방세, 다가구주택 확정일자 현황 등을 반드시 확인해 선순위 권리자 및 금액을 확인하고 계약 체결여부를 결정해야 보증금을 지킬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문제는 이 서류를 임대인이 동의해야만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집주인과 중개인이 공모하는 경우 전문지식과 경험이 부족한 초보 임차인들은 이 서류를 챙기기 어렵다. 그러므로 임대인 동의를 얻어 중개인이 계약서에 의무적으로 첨부하도록 개선돼야 한다.
대항력 관련 제도의 허점도 보완해야 한다. 만약 전입신고 하는 날 집주인이 대출을 받고 근저당이 설정되면 임차인은 순위가 밀리고 사고 시 보증금을 떼일 수 있다. 임차인의 대항력은 전입신고 한 다음날 0시부터 생기기 때문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계약서 특약 사항에 ‘전입신고의 효력이 발생하는 계약일 다음 날까지 계약 당시 상태로 유지한다(또는 근저당권을 설정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포함시켜야 한다. 그런데 이를 잘 알지 못하는 임차인도 많으니 아예 표준계약서에 이 문구를 기본사항으로 넣어서 이런 사기를 원천봉쇄해야 한다.
가칭 ‘계약정보공개 청구권’의 도입도 고려해볼 만하다. 임차인이 알고 싶은 정보에 대해 청구하면 중개인은 임차인을 대신해 주택의 물리적 상태, 대출 및 납세정보, 신탁의 경우 권리순위, 임대인의 소유주택수 등에 대해 정보를 확인해 계약서에 첨부하고 그에 대해 중개인이 보증하는 제도다. 전세계약에 이 제도를 도입하면 전세사기 예방효과도 있을 뿐 아니라 중개보수에 대한 정당성도 확보하면서 그에 대한 책임도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전세사기는 분명 전세제도의 허점을 이용하고 있다. 그렇다고 전세계약을 금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제도적 허점을 신속하게 보완하고 임차인에게 사전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최선이다. 서민 주거안정을 위해서는 주거비 보조나 공공임대 확대도 필요하지만 훨씬 더 많은 서민이 영향을 받는 전세사기를 막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