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헌법재판관들 "박근혜 탄핵으로 정신적 고통? 어불성설"

입력
2022.07.1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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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종창 "위법 탄핵으로 마음의 병" 소송 
당시 재판관들 "양심으로 내린 결정" 반박
5년째 재판 중... 1심 결론 조만간 나올 듯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결정했던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자신들을 상대로 제기된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려달라"는 의견을 법원에 제출했다. 헌법과 법률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을 탄핵했기 때문에 배상 책임이 없다는 취지다. 원고 측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당시 주심 강일원 재판관)는 2017년 3월 재판관 8명 만장일치 의견으로 박 전 대통령을 탄핵했다. 박 전 대통령이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민간인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의 사적 이익을 챙겨주는 데 남용했으므로, 대통령직을 더 이상 맡겨선 안 될 중대한 법적 위반을 저질렀다는 취지였다.

우종창 전 조선일보 기자 등 479명은 같은 해 박 전 대통령 탄핵을 결정한 헌법재판관들과 국가를 상대로 1억4,000여 만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관들이 근거 없이 박 전 대통령을 파면해 헌정 질서를 유린했고, 국민들은 생업을 포기하며 저항하고 있으며 일부는 마음의 병을 얻었다"는 게 이유였다.

김이수 "위법 저지른 적 없고, 원고 적격도 없다"

17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박 전 대통령 탄핵 사건을 심리한 강일원, 김이수, 김창종 전 헌법재판관은 최근 "탄핵 결정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적법하고 공정하게 이뤄졌으므로 손해배상 책임이 발생할 여지가 없다"며 "원고들 청구를 모두 기각하고, 소송비용은 원고들이 부담한다는 판결을 내려달라"는 답변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특히 김이수 전 재판관은 강일원·김창종 전 재판관과 달리 법리까지 상세히 설명하며 반박에 나섰다. 김 전 재판관은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국가 배상책임이 인정되려면 헌법재판관이 위법한 결정을 했거나 권한을 명백히 어긋나게 행사한 사실이 증명돼야 한다"며 "헌법재판관들은 박 전 대통령 탄핵 결정 과정에서 국가 배상책임의 사유가 될 만한 위법을 저지른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김이수 전 재판관은 원고들의 소송 자격도 문제 삼았다. 그는 "손해배상 책임은 권리 침해를 전제로 한다"며 "우 전 기자 등은 피청구인(박 전 대통령)이 아니므로 권리 침해를 주장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우종창 "위법한 탄핵 맞아"... 조만간 1심 결과 나올 듯

우 전 기자 측은 전직 재판관들의 주장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우 전 기자는 "헌재의 박 전 대통령 탄핵 결정문은 대법원 판결문과 검찰 수사기록 등과 비교하면 사실관계를 잘못 기재한 오류가 상당히 많다"며 "재판관들이 위법 또는 부당한 목적을 갖고 탄핵 심판을 무리하게 서둘렀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우 전 기자 측은 소송 자격을 문제 삼는 지적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우 전 기자는 "재판 초반에 원고 자격이 있는지 논쟁이 불거졌지만, 법원이 인정해줬기 때문에 5년째 소송을 진행하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전직 헌법재판관들을 상대로 5년째 계속되고 있는 이번 소송은 조만간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사건을 심리 중인 서울중앙지법 민사207단독 경정원 판사는 12일 열린 변론기일에서 "원고(우 전 기자) 측이 헌재에 송부를 요청한 문서를 받든 못 받든, 양측 입장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밝히도록 한 뒤 사건을 마치겠다"고 밝혔다. 우 전 기자는 헌재에 당시 재판관들이 작성한 박 전 대통령 탄핵 사건 준비절차 조서 3개와 재판관들이 정리한 탄핵소추 사유서 2개 등을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박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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