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냉전 캐스팅보터 인도

입력
2022.07.17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러시아는 현재 대(對)인도 석유 수출량 2위 국가다. 인도는 그간 세계 3위에 달하는 원유 수입량의 60%를 걸프국에서 들여왔고 러시아산 점유율(지난해 2.13%)은 9위에 불과했다. 비약적 순위 도약은 올해 2월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일어났다. 서방의 원유 금수로 러시아산 원유 가격이 폭락하자 인도는 재빨리 나섰다. 4월 초까지 한 달 남짓 러시아로부터 사들인 원유만 해도 지난해 연간 구매량의 2배를 넘겼다. 이걸 '원산지 세탁' 후 재수출해 막대한 차익을 챙겼다는 뒷말도 돈다. 미국과 유럽의 대러 제재 효과는 뚝 떨어졌다.

□ 이달부터는 태세를 전환, 수출 관세 증액과 쿼터제로 석유 수출을 규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로 인플레이션에 성장 저하 우려가 높아지자 값싼 러시아 원유를 국내 경제에 우선 투입하는 조치다. 싸움판에 얄미우리만치 실리를 챙기고 있지만 누구도 타박하지 않는다. 미국은 4월 정상회담에서 러시아 원유 수입을 문제 삼으면서도 "인도의 에너지 수입 다변화를 돕겠다"며 좋은 말로 달랬다. 인내와 정성이 통했는지,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그다음 달 미국 주도의 반(反)중국 경제협력체인 IPEF 출범식에 참여했다. 인도를 '러시아 편들기' 우군으로 여겼던 중국의 표정이 어두워질 차례였다.

□ 인도의 중립·실용 노선은 새삼스러울 게 없다. 냉전 시대엔 제3세계 비동맹운동의 기수였고, 미국·소련 어느 쪽과도 동맹을 맺지 않은 채 남아시아 맹주로서 갖은 분쟁을 관리해왔다. 숙적 파키스탄의 편을 들곤 했던 미국보다는 러시아(옛 소련)와 더 잘 지내온 게 사실이지만, 미래 경제대국 자리를 두고 중국과 겨뤄야 하는 지금은 기꺼이 미국·일본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 균형 외교가 숙명이라는 점은 한국도 비슷하다. 다만 미중 갈등, 북한 핵·미사일 개발, 우크라이나 사태가 중첩돼 신냉전을 방불케 할 만큼 깊어진 대립 구도에서 두 나라 처신은 사뭇 다르다. 인도 외교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 관여하고, 중국을 관리하며, 유럽과는 돈독하게, 러시아는 안심시키고, 일본에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식민지 독립 이후 70여 년을 무소의 뿔처럼 걸어온 14억 대국의 원모심려다.

이훈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