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또 어린이·민간인 폭격… "'테러국가' 왜 지정 않나"

입력
2022.07.15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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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가 등 공습으로 23명 사망·70여 명 부상
세계 45개국, '전범' 수사 지원 강화 발표에도
법적 처벌 실효성 묻는 목소리 커져
"러, '테러국' 지정 안 하면  국제협약 무슨 소용"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서부 도시 빈니차를 폭격해 최소 23명이 사망했다. 우크라이나의 서방 동맹들은 러시아의 전쟁범죄 조사 강화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상징적 조치인 법적 처벌 대신, 실효성 있는 '테러국가' 지정으로 러시아를 엄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러시아, 또 민간시설 공격…"모든 전범 처벌해야"

14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흑해 러시아 잠수함에서 발사된 칼리브르 순항 미사일이 이날 오전 빈니차를 타격했다고 보도했다. 주택가 등 민간 시설이 폭격당해 최소 23명이 숨지고 70여 명이 다쳤다. 실종자도 39명에 달한다. 이호르 클라이멘코 우크라이나 경찰청장은 "어린이 3명도 숨졌으며, 주검 6구만 신원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미국과 영국 등 세계 45개국 대표는 이날 러시아의 전쟁범죄 책임을 규명하기 위해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위치한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회의를 열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화상으로 참석해 러시아 처벌을 촉구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주거단지가 파괴되고 의료기관은 불탔다. 이건 테러행위"라며 "모든 러시아 전범에 대한 의무적·원칙적 처벌"을 요구했다.

각국 대표는 전쟁범죄 수사 지원 확대를 원칙적으로 약속했다. 총 2,000만 달러(약 263억 원) 지원과 우크라이나 검사 양성, 법의학팀 확대 등을 약속하는 선언문에 서명했다. ICC 측은 "러시아군의 전쟁범죄 혐의 약 2만3,000건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민간 시설을 조준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예브게니 바르가노프 러시아 유엔 상임이사관은 "빈니차 공습은 우크라이나군이 훈련받는 장교 숙소를 목표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AP통신 등은 현지 목격자를 인용해 의료기관이 폭격당했다고 확인했다.

"테러 저질러도 '테러지원국' 지정 없어"


러시아군의 상습적 민간인 폭격은 국제기구의 전범 수사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ICC가 전쟁의 '원흉'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기소해도 물리적인 체포나 처벌은 어렵다. 이 때문에 실효성이 더 큰 '테러국·테러지원국 지정'을 추진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테러는 보통 '정치적 목적으로 민간인에게 가하는 의도적·무차별적 공격'으로 정의된다. 지난 3월 우크라이나 마리우폴 극장 폭격이나 4월 크라마토르스크 기차역 공격 등은 모두 테러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러시아를 테러국·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한 국가는 거의 없다. 관계 악화를 감수해야 하는 데다 '대부분의 교류 중단'이라는 법적 의무도 따르기 때문이다. 일례로 미국은 수출관리법규에 따라 테러지원국에 ①무기 포함 테러 전용 가능성 품목 수출 ②일반 특혜 관세제도 적용 등을 금지한다. ③테러지원국과 거래하는 국가들에도 경제적 불이익을 준다.

테러를 저지른 나라에 '테러국가' 지정을 꺼리면 국제법이 무슨 소용이냐는 비판이 나온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우크라이나의 서방 동맹들은 여전히 러시아를 테러국가로 지정하지 않고 있다"며 "이는 이런 종류의 공포에 대처하기 위해 오랫동안 확립해온 국제협정을 비웃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시사주간지 애틀랜틱도 "러시아의 테러가 지속될수록 이것을 막기 위해 고안된 국제법과 관행의 구조를 흔드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고 우려했다.

장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