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위한 결정" 적자 허덕이던 HMM, 15조 원 투자 카드로 승부 건다

입력
2022.07.14 16:40
9년 적자 끝 6개 분기 연속 최대 실적 경신
2026년까지 선박·터미널·물류시설 15조 투자
벌크선 사업, 5년 내 29척→55척...90% 확대


국내 최대 컨테이너 선사인 HMM(옛 현대상선)이 앞으로 5년 동안 선박과 터미널, 물류시설 등 핵심자산 등에 15조 원을 투입한다. 지난 9년 동안 적자를 이어오다 2016년부터 산업은행 등 채권단 관리 체제로 운영 중인 HMM이 미래 생존과 성장을 위해 대규모 투자에 나선 건 최근 10년 사이에 처음이다.

HMM은 14일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중장기 전략을 발표했다. ESG 등 환경 규제와 디지털 전환 등으로 글로벌 해운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국내 최대 국적선사로서 탄탄한 성장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차원이다.

HMM의 실행 전략은 크게 ①사업 전략 기반 투자 및 재무 전략 ②컨테이너선 및 벌크선 사업 전략 ③환경규제 변화에 따른 대응 전략 ④디지털 가속화 대응 전략 ⑤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조직역량 강화 전략으로 요약된다.

먼저 HMM은 최대 해운사로서의 역량 강화를 위해 2026년까지 120만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의 친환경 선대를 확보할 계획이다. 현재 HMM의 선복량은 82만TEU 수준이다. 또 핵심지역 터미널 등 물류 인프라를 확보해 수익 기반을 강화하고, 추가 노선을 확대하는 등 서비스 영역을 넓힐 예정이다. 아울러 컨테이너와 벌크 사업의 균형 성장을 추진하기 위해 현재 29척인 벌크선 사업 규모를 2026년 55척으로 90% 확대한다.

HMM이 이 같은 대규모 투자에 나서는 건 급변하는 산업 환경 속에서 미래 생존을 위해 선제적으로 대비하기 위해서다. HMM은 2010년 6,018억 원의 영업 이익을 달성한 이후 글로벌 해운경기 장기 불황으로 인해 9년 동안 적자에 시달렸다. HMM의 9년 동안 누적 영업손실은 약 3조8,401억 원에 달한다. 김경배 HMM 사장은 "이번 중장기 전략은 글로벌 해운물류기업으로서 미래에도 생존 및 성장을 이어가기 위해 관련 사업에 투자한 것"이라며 "국적 선사로서 책임을 다하고 글로벌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해 앞으로도 다각도로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재무적으로는 선박과 터미널, 물류시설 등 핵심자산에 10조 원을 투입하고, 선사와 친환경 연료, 종합물류 등 사업 다각화를 위한 미래전략사업에 5조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e-플랫폼 구축과 전사적자원관리(ERP) 고도화 등 디지털 전환에는 1,500억 원을 투자한다. 이 밖에도 미래전략사업 투자를 꾸준히 검토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사업 영역을 적극적으로 키울 방침이다.



"15조 원 투자 재원, 시장환경·재무여건 맞춰 결정"


대규모 투자를 위한 재원은 이미 상당 부분 마련된 상태다. HMM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물류 증가와 해운업 호황에 힘입어 지난해 영업이익 7조3,775억 원, 올해 1분기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3조1,486억 원을 기록하는 등 2020년 4분기 이후 6개 분기 연속 최대 실적을 경신하고 있다.

다만 시장 환경과 재무 여건에 맞춰 자금 투입 규모를 결정한다는 게 HMM 측 설명이다. 최윤성 HMM 전략재무총괄 전무는 "대규모 자산을 확보하기 위해 타인자금을 써야 하는 레버리지도 상당히 중요하다"며 "앞으로 5년 동안 시장 환경이나 재무적 여건에 따라 자기자금 투입분에 대한 규모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환경규제에 발맞춘 대응 전략 차원에선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환경친화적 물류 서비스를 강화한다. HMM은 보유 중인 선박에 대해 이미 저유황유로 대체하는 한편 스크러버를 설치하는 등 단기 대응을 마쳤다. 여기에 액화천연가스(LNG) 추진선 등 친환경 연료 기반의 저탄소 선박 확보에도 주력하고, 장기적으로는 국내 친환경 연료 개발을 선도하기 위해 대체 연료 관련 협의체도 구성할 방침이다.

HMM은 중장기적으로 인공지능(AI) 운임 솔루션을 적용하는 등 디지털화에도 속도를 낸다. HMM은 최근 온라인 선복 판매 플랫폼 '하이퀏'(Hi Quote)을 자체 기술력으로 개발했으며 디지털 전략을 추진하기 위한 전담 조직도 새롭게 구축할 예정이다.

민영화 이슈와 주가 하락에 대한 질의에는 투자를 통해 기초 체력을 키우겠다고 답했다. 김 사장은 "아직 시기나 방법에 대해서는 대주주들과 논의하지 않았다"며 "민영화와 별개로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 필요한 투자를 해야 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최근 HMM 주가 하락으로 인한 일부 주주들의 불만에 대해선 "주가가 기대에 못 미치는 면이 있지만, 사업적 이슈와는 다르다고 본다"며 "튼튼하고 건강한 회사를 만들면 펀더멘털이 좋아져 주가도 좋아지고, 주주가치도 높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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