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오전 7시. 190년 전 벽안의 외국인 선교사가 궂은 날씨를 뚫고 찾았다는 서해의 작은 섬 고대도를 향해 출발했다. 충남 보령 대천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삽시도와 장고도를 거쳐 1시간 30분 정도 지나자, 목적지인 고대도가 먼발치에서 눈에 들어왔다. 태안해안국립공원에 속한 원산도와 안면도 등 주변 섬들이 해저터널과 연도교 등으로 육지나 다른 섬들과 연결됐지만, 고대도는 여전히 '온전한 섬'으로 남아있다. 하루 세 번뿐인 배를 이용해야 섬에 들어갈 수 있기에, 고대도는 자연 환경이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90분간 뱃길을 지나면서 왜 독일 선교사가 "바람막이가 잘 돼있다"고 언급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동쪽 원산도와 서쪽 장고도, 남쪽 삽시도, 북쪽 안면도로 둘러싸인 '섬 속의 섬'이 고대도다. 김흥태 고대도 이장은 "4면이 섬으로 둘러싸인 덕분에 파도가 높지 않은 게 특징"이라며 "예전부터 서해안을 지나는 배들의 중간 휴게소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조선시대 전라도에서 한양으로 쌀을 싣고 올라가던 공납선이 반드시 들렀던 섬도 고대도다. 이 때문에 면적 0.98㎡, 해안선 길이 4.3㎞의 작은 섬이지만 과거에는 수백 척의 어선이 집결했고, 어상과 조선소까지 있었다. 인근에는 '쌀 썩은 여(礖·썰물 때 바닷물 위에 드러나고 밀물 때 바다에 잠기는 바위)'라는 이름의 암초도 있었다.
독일인 선교사 칼 귀츨라프가 머물렀던 고대도는 개신교 신자들에게 '선교의 성지'로 꼽힌다. 개신교 내에선 귀츨라프를 연구하는 학회까지 꾸려졌을 정도다. 귀츨라프가 고대도에 처음 발을 들인 건 조선 후기인 1832년 7월이다. 영국 출신의 로버트 토마스(1866년)나 미국 출신 헨리 아펜젤러(1885년)와 호러스 언더우드(1885년) 등 비슷한 시기 조선을 방문한 다른 선교사들보다도 앞섰다. 그가 머물렀던 기간이 17일에 불과해 일각에선 '귀츨라프가 선교 활동을 했다고 볼 수 있느냐'는 논란도 있다. 하지만 기록상 가장 처음 우리나라에 성경을 전달한 외국인 선교사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귀츨라프 일기에 적힌 내용을 따라 190년 전 섬의 모습과 현재를 비교하는 것은 고대도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귀츨라프는 1832년 7월 30일 일기에서 "언덕 위에 절도 찾아가 봤다. 사방을 종이로 바른 한 칸의 공간인데, 가운데는 소금에 절인 고기 한 마리가 매달려 있었고 바닥에는 금속으로 만든 용이 눕혀 있었다"고 적었다. 실제 배에서 내려 마을이 있는 섬 반대쪽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절터만 남아있는 각시당이 눈에 들어온다. 귀츨라프가 묘사한 곳이다. 김 이장은 "십여 년 전 무당에 의해 불에 타 없어지기 전까지, 주민들은 오랫동안 이곳에서 만선과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풍어제를 지냈다"고 전했다.
좁다란 해안길을 따라 해안 끝 선바위 쪽으로 향하면, 해안에 귀츨라프 선교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2016년 세워진 선교 기념비에는 그가 선교 활동 때 사용한 한문식 이름인 '곽실엽(郭實獵)'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고대도에 머무는 동안 한문 필담과 중국어로 주민들과 소통한 귀츨라프는 '곽'씨로 통했다. 짧은 기간 머물렀지만, 귀츨라프는 감자를 전파하고, 포도주 제조법도 전수했다. 고대도에선 2014년부터 매년 7월 귀츨라프의 날을 제정하고 기념행사를 열고 있다. 올해는 '제1회 고대도 칼 귀츨라프 국제영화제'까지 열어 7편의 영화를 상영했다.
최초의 외국 선교사가 머물렀던 섬이란 상징성이 있지만, 고대도는 최근 귀츨라프가 머물 때와 다른 모습으로 주민들에게 걱정을 안기고 있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고대도는 먹을 것이 많은 섬이었다. 썰물 때 맞춰 밤에 해루질을 나가면 손전등 불빛을 보고 모여든 낙지와 해삼 등을 맨손으로 가득 건져올릴 수 있었다. 값을 후하게 쳐준 바지락과 전복 등은 자녀 대학 등록금을 낼 수 있을 정도의 목돈이 됐다. 근해에서 잡아온 멸치와 새우 등도 없어서 못 팔 정도의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최근 고대도 주민들에게 효자 노릇을 하던 어패류들이 예전처럼 잡히지 않아 주민들 시름이 적지 않다. 이 중에서도 주민들 주머니를 두둑하게 했던 바지락은 씨가 말라가는 수준이다. 허광규 고대도 어촌계장은 "통상 한 달에 20일가량 바지락을 수확했지만, 5월에 캐보니 너무 작고 폐사한 것이 많아 사흘 동안만 바지락을 캔 뒤 작업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금어기 이후인 8월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근해에서 잡아들이는 물고기들도 최근 몇 년 사이 10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허 계장은 "예전에는 집집마다 고깃배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는 배를 정리하는 주민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생활터전의 변화에 섬 주민들은 적잖이 당황하고 있다. 주민들은 "수온이 오르고 물길이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라며 섬 주변의 환경 변화를 원인으로 꼽았다. 바지락은 간수와 바닷물이 섞인 강 하구 등에서 잘 자란다. 그러나 충남 태안 쪽에 천수만 방조제(1984년)가 생기고, 고대도 명물이 된 남측 방파제(2012년)까지 들어서면서, 간수가 바닷물과 섞이지 않아 고대도 갯벌 생태계에 변화가 생겼다. 인근 보령화력발전소(1983년) 건설 이후 주변 바닷물 수온 상승도 주민들에게는 꺼림칙한 대목이다.
보령시는 고대도 생태계 회복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보령시 관계자는 "어족자원 감소가 심각한 수준"이라면서 "어획량 감소에 대처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보령시에서 1년간 수산물 방류 사업비에 투입하는 예산만 10억 원 규모다. 올해도 △바지락 3억5,500만 원 △돔류·꽃게·대하 6억5,000만 원 △해삼 2억9,200만 원 △전복 7,100만 원의 예산이 책정돼 있다.
국립수산과학원 서해수산연구소 갯벌연구센터 관계자는 "어획량 감소 원인은 복합적이지 않겠나"면서도 "고대도의 생태 변화 연구는 따로 진행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