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을 앞둔 학생들과 밥을 먹다가 이런 질문을 받았다. “교수님께서는 원래 교수가 되고 싶으셨나요?” 작년 단과대학 학생회가 발행하는 뉴스레터에 실릴 교수 인터뷰에서도 같은 질문이 나왔다. 그때마다 “공부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안정적으로 공부를 계속하려면 교수가 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라는 옹색한 대답을 내놓았다.
대학원에 진학할 당시에는 연구자의 여러 형태 중 교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연구자 사이의 다양한 ‘계급’이 형성되었다. 강사, 연구원, 연구교수, 학과 교수 등 한국연구재단이 주도하는 다양한 대형 프로젝트 사이에서 연구자는 위계화되었다. 연구자 대신 저 직업의 명칭이 자신을 설명하는 단어가 된 것이다.
직업이 노동을 바탕으로 재화를 생산하는 일이라고 규정된다면, 연구자의 위치는 몹시 복잡해진다. 연구에 들어가는 시간은 산술적으로 계산되지 않는다. 고료가 10만 원인 글을 쓰기 위해서 몇 날 며칠을 보내는 일도 허다하다. 원고료는 청탁받은 매수만큼만 나오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분량의 글을 보내기도 한다. 애초에 인문학 연구가 산술적으로 환원되기란 쉽지 않다. 노동과 임금이 환원되지 않는다면, 직업으로서의 연구자는 어떤 방식으로 규정될 수 있을까? 왜 누군가는 연구자가 되려 할까?
그런 고민을 가지고 책 ‘연구자의 탄생’을 열었다. 박사 과정 학생에서부터 교수까지 연구자 10명의 에세이를 모은 이 책은 저마다 자신의 연구 환경과 연구 주제, 그 접근 방식을 소개한다. ‘포스트-포스트 시대의 지식 생산과 글쓰기’라는 부제처럼,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끝나고 포스트 근대성이 대학(원)의 중심이던 시절 공부를 시작한 연구자들은 자신의 문제의식을 벼려내는 방식을 다원화했다.
이제는 그 포스트 근대성에 대한 반성과 비판이 이루어지고 있다. 부제의 '포스트-포스트 시대'는 이를 의미한다. 나와 마찬가지로 연구재단 세대이기도 한 이들은 노동자와 같은 전통적인 의제에서부터 뉴미디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제들을 바탕으로 한국사회를 읽어낸다. 페미니즘과 퀴어(성소수자) 정치, 감정사회학, 인터넷 공간, 영화, 금융화, 지역학으로서의 한국학 등 새롭게 학문 장에 등장한 의제들은 한국의 인문학과 사회과학이 2000년대 이후 전개되는 방향을 보여준다.
이 중 가장 눈을 끈 것은 연구자의 생태계를 고민한 천주희와 안은별의 글이다. 천주희의 글 ‘나는 내일도 연구자이고 싶다’는 학자금 대출에서부터 석사 연구자의 지위, 프로젝트형 사업의 한계 등을 중심으로 신진 연구자들의 생태계를 주목한다. 그는 오롯이 한 프로젝트의 연구 책임자가 되기에 석사는 자격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이례적으로 공론장의 주목을 받는 작업을 수행했지만, 자신을 청년세대의 대표로만 환원하는 한계를 목도한다.
대학 졸업 후 서평과 인터뷰를 전문으로 다루는 기자를 하다 대학원 진학을 결정한 안은별은 해적판 일본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던 10대 시절의 경험부터 저가 항공의 등장으로 쉽게 오갈 수 있는 다른 세계였던 시기를 거쳐 일본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고 설명한다. 자신의 연구 의제가 삶의 환경과 연결되는 장면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유학생을 지원하는 일본 문부과학성의 국비유학 제도였다. 연구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장학 수단이 있다는 점이 유학을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이다. 안은별은 기자, 작가, 연구자인 자신의 복합적인 정체성 사이에서 연구자와 작가를 구분하는 위계를 문제 삼는다. 연구자와 작가는, 연구서와 대중서는 그렇게 엄밀히 구분되는 것일까? 인문학의 대중화를 강조하는 연구자의 생태계에서 언젠가부터 구별 짓기가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은 것이 오히려 눈에 띄는 지점이다.
“교육부가 반도체부가 된다”는 양향자 국민의힘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특별위원회 위원장의 말은 교육과 학문을 취업과 실용을 위한 준비 단계로 재정의한다. 이런 상황에서 인문사회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어떤 고민을 갖고 있는지를 세밀하게 따라가는 ‘연구자의 탄생’을 읽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도 연구자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 연구자가 있다.
허윤 부경대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