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찬 열풍, 강변 연주홀 하나라도 짓자

입력
2022.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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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전공은 연금 분야다. 연금과 관련된 칼럼을 계속 써 왔다. 그럼에도 이번만은 예외로 음악에 대한, 임윤찬에 대한 글을 쓰게 됐다. "앞으로 주변에서 많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아직 채워 나가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어떤 유혹이 닥치더라도 지조를 지키며 자신만의 개성을 발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쇼팽 콩쿠르 우승 후에 2년 동안 자취를 감추었다가 나타난 마우리치오 폴리니를 언급한 스승 손민수 교수 말이 가슴에 와닿아서다.

지난 6월 19일 오전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리나라 피아니스트가 우승했다는 뉴스를 접하자마자, 난 콩쿠르 홈페이지를 찾아 연주를 들어봤다. 결선곡인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은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볼륨을 최대한 키우면 들을 수 있다는 댓글을 보고 최대로 볼륨을 키우니 간신히 들을 수 있었다. 아주 희미하게 들렸음에도 몇 번인가 울컥했다.

18세 젊은이의 뛰어난 연주 실력 외에 경연 장소가 텍사스 포트워스라서 더 그러했던 것 같다. 외롭게 혼자 공부하던 시절, 아내가 짧은 방학기간 동안 남편 만나러 왔다가 어린아이 데리고 한국으로 되돌아가던 곳이 댈러스-포트워스 공항이었다. 서울 직항 노선이 있어서였다. 서울로 떠나보낸 뒤 3시간 차를 몰고 학교로 돌아오면서 들었던 음악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이었다. 바로 그곳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그 정도로 열심히 피아노 치는 사람은 없는 거 같다. 본인 인생을 본인의 템포대로 살려면 연주 활동을 최소화하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할 시간이 필요하다. 주위를 배려하되 자기의 생각을 혼자서 믿고 성장시켜 나갈 때 좋은 음악이 나올 수 있다. 더 멀리 내다보고 내면에서 음악이 살아날 수 있는 시간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스승 손민수 교수의 발언들이다. 18세 청년의 2∼3년은 다른 연령층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의 폭풍 성장이 가능한 시기라서 그러할 것이다.

칼럼 쓰기 전에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음반들을 다시 들어봤다. 반 클라이번의 카네기홀 실황 음반을 시작으로, 마리스 얀손스가 지휘한 세인트 피터스부르그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미하일 루디, 리카르도 샤이와 협연한 마르타 아르헤리치, 그리고 키릴 콘트라신과 협연한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 야샤 호렌슈타인과 협연한 얼 와일드,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협연한 라자르 베르만, 조르주 프레트르와 협연한 알렉시스 바이젠베르크, 에도 데 바르트와 협연한 졸탄 코치슈, 콘트라신과 협연한 에밀 길렐스의 1949년 멜로디아 음반에 이르기까지.

이들 음반을 들으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개인적 호불호를 넘어 동서양 클래식 팬의 영혼을 달래주는 임윤찬만의 개성을 지닌 연주를 들어보고 싶다. 세계 최고 수준의 오케스트라·지휘자와 함께 인류 문화유산으로 남을 수 있는 그런 연주 말이다. 이를 위해 우리 사회가, 폭풍 성장기 시절의 수많은 외부 유혹으로부터 그를 보호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임윤찬 자신의 말처럼 레퍼런스 연주의 모방이 아닌, 단지 악보를 통해 작곡가와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자신만의 개성을 찾아갈 수 있도록.

대신 지금의 열기는 수변도시 서울의 장점을 세계에 제대로 알릴 수 있게 규모는 소박해도 어쿠스틱이 좋은 독립된 전용 연주홀 몇 개 지을 에너지로 활용하면 좋겠다. 오슬로와 시드니오페라하우스, 루체른 문화컨벤션센터의 수변 시설처럼 규모는 크지 않더라도, 우리의 개성을 한껏 뽐낸 연주홀에서 연주하는 임윤찬을 보고 싶어서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한국연금학회 전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