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뭐 좋아하냐?” TV 프로그램 제작사에 입사하던 날, 스물아홉의 늦깎이 신입사원에게 상사가 물었습니다. 물음표가 떨어지기 무섭게 마중 나온 대답. “전 코미디를 좋아합니다.” ‘시크릿 가든’ 같은 드라마도, ‘1박2일’ 같은 예능도, ‘슈퍼스타K’같은 서바이벌도 아니고 단물 다 빠진 코미디라니. 상사는 옳다구나 반색을 했죠. 아무도 가고 싶어하지 않는 자리에 딱 맞는 적임자가 생겼으니까요. “코미디 좋아한다니 딱이네.” 그렇게 그는 누구도 탐내지 않아 재고가 수북이 쌓인 ‘비인기 코너’의 매대를 지키게 됩니다. 때는 2010년, 코미디가 딱 그 정도의 취급을 받던 시절이었죠.
940만 명. 그로부터 12년 후, 그의 손을 거쳐 탄생한 ‘대박 상품’들의 성적표입니다. 한사랑산악회, B대면데이트, 05학번이즈백 시리즈로 메가 히트를 친 155만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부터, 리얼한 스케치코미디로 반년 만에 199만 구독자를 모은 ‘숏박스’, 국내 최초 애니메이션 더빙 코미디를 선보이고 있는 315만 채널 ‘장삐쭈’까지... 이 모든 히트작들이 한때는 먼지만 풀풀 날렸던 ‘이 사람’의 매대 위에서 붙티나게 팔려 나가고 있습니다. 국내 최초 코미디 레이블, ‘메타코미디’를 만든 정영준(40) 대표의 이야깁니다.
일요일 밤 9시면 온 가족이 텔레비전 앞에 둘러앉아 KBS 개그콘서트(이하 개콘)를 보던 시절, 기억나시나요? SBS 웃찾사, MBC 개그야가 ‘삼국지’처럼 힘겨루기를 하던 ‘공개코미디 전성시대’는 10년 전쯤부터 급속도로 저물기 시작했습니다. 한때 3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자랑했던 웃찾사와 개콘은 저조한 시청률을 반등하지 못하고 맥없이 막을 내렸죠. 그 끝물에 간신히 데뷔한 젊은 코미디언들은 지명도를 쌓을 새도 없이 하루아침에 무대를 잃어버렸습니다. 갈 곳이 없어진 이들은 홍대의 소극장들을 전전하게 되죠.
좁디 좁은 무대, 관객이라고 해봤자 열댓 명 남짓. 듬성듬성 비어 있던 관객석 한 켠에 늘 조용히 앉아 있던 손님이 있었는데요. 그게 바로 영준씨였다고 해요. 허름한 무대에서도 광채를 뿜어내던 그들의 재능을 가장 먼저 알아봤죠. “이 친구들, 천재인데?” 어항에 갇힌 이 고래들을, 넓은 바다에 풀어주기로 합니다. 그들에게 ‘유튜브’라는 새로운 무대를 열어준 것이죠. ‘피식대학’(154만)의 정재형, 이용주, 김민수. ‘빵송국’(40만)의 곽범, 이창호. ‘숏박스’(198만)의 엄지윤, 김원훈, 조진세. 이 고래들은 지금, 유튜브라는 광활한 바다를 힘차게 헤엄쳐 나가고 있습니다.
영준씨는 드라마와 예능, 쇼버라이어티가 점령한 콘텐츠업계에서 오직, ‘코미디 외길’ 인생만을 걸어온 지독한 덕후입니다. "10대 시절부터 ‘코미디’만 보고 살았죠. 미국의 스탠드업 코미디부터, 일본의 만사이(만담) 개그까지… 앞뒤 안 가리고 불도저처럼 팠죠." 그렇게 열광하다 보니 문득 궁금했다고 해요. “왜 한국엔 일본의 요시모토흥업이나 미국의 코미디센트럴 같은 ‘제대로 된’ 코미디 기획사가 없을까?” 그래서 한국의 코미디판에 뛰어들기로 합니다.
코미디를 만드는 현장에서 영준씨는 그야말로 날아다녔습니다. 첫 직장이었던 CJ ENM에서는 전례가 없었던 페이스북 마케팅을 벌여 'SNL 코리아' 시즌3에 성공의 날개를 달았고, YG엔터테인먼트에서는 국내 최초 1,300석 규모의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 '유병재의 B의 농담'을 선보였죠. MCN 샌드박스에서는 개콘 폐지 후 뿔뿔이 흩어진 코미디언들을 모아,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키워 냈고요.
어느 순간 돌아보니 ‘전천후 코미디 전문가’가 되어 있었어요. 제작사에선 ‘콘텐츠로 돈 버는 법’을 배웠고, 연예기획사에선 ‘매니지먼트의 기술’을 익혔죠. 마지막 정착지였던 MCN(멀티채널네트워크)에선 '유튜브 세계의 문법'을 습득했습니다. 그렇게 10년을 살다 보니, 다시 스무 살 때의 질문이 떠오르더랍니다. “왜 한국엔 제대로 된 코미디 기획사가 없을까?” 그래서 만들기로 했어요. 지난해 7월 문을 연 ‘메타코미디’가 바로 그런 회사죠.
메타코미디는 국내 최초 ‘코미디 레이블’이에요. 레이블(Label)이란 음반 업계에서 흔히 쓰이는 말인데요.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는 인디록, 힙합, 재즈 아티스트들이 모인 ‘소규모 음반 기획사’를 이르던 용어예요. 정확한 사전적 정의는 없지만, ‘특정한 색깔을 가진 아티스트들이 모여 있는 브랜드’를 뜻합니다. 비유하자면, 대형 엔터테인먼트는 세계 어디에서도 같은 맛을 선보이는 ‘스타벅스’인 반면, 레이블은 주인장의 취향이 강하게 배어 있는 작은 로컬 카페인 셈이죠.
영준씨가 만들고 싶었던 회사도 비슷했어요. 규격화된 시스템이 아니라, 창작자 한 명 한 명의 독특한 기질을 살려줄 수 있는 개성있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죠. 힙합 뮤지션들이 크루(crew)를 이루는 것처럼, 코미디언들 역시 잘 어울리는 한 패를 이룬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졌습니다.
재미주의자가 지어 올린 이 ‘코미디공방’엔 기상천외한 천재들이 모였습니다. 전 세계 60억 팬클럽을 거느린 월드스타 아이돌 매드몬스터, 본더치 모자에 망고 나시를 입고 동대문을 누비는 05학번 형들, ‘여으얼정!’을 외치며 주말마다 산에 오르는 아재들… 시대상을 교묘히 비틀어 풍자한 세계관과 캐릭터는 대중을 금세 사로잡았죠.
영준씨는 그들이 신명나게 놀 수 있도록 튼튼한 멍석을 깔아 줬어요. 가끔은 그들이 만든 세계 안에서 ‘투잡’을 뛰기도 합니다. 그의 또 다른 자아는 아이돌 매드몬스터를 성공시킨 매드엔터테인먼트의 수장 ‘대디(DADDY)’로 활동하고 있거든요. ‘비주류 장르', 코미디의 호쾌한 역전을 이끈 정영준 메타코미디 대표를 지난달 두 번에 걸쳐 서울 마포구 서교동 메타코미디 사옥에서 만났습니다.
그토록 사랑했던 건축을 포기했을 때, 그의 나이는 스물아홉. 그다음으로 선택한 회사는 CJ ENM이었습니다. 건축가였던 사람이 갑자기 콘텐츠 제작사에 들어간다니 ‘이게 무슨 반전 전개인가’ 싶기도 하죠. 하지만 당시의 영준씨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해요. “저는 어떤 형태로든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이었거든요. 그 언어가 '공간'에서 '미디어'로 바뀌었을 뿐인 거죠.” 창의성을 발휘해 메시지를 담는 직업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집을 짓는 일이나 TV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겁니다. 적어도 영준씨의 관점에서는요.
영준씨에게 콘텐츠의 세계가 낯설지 않았던 건, 그가 어마어마한 ‘코미디 중독자’였기 때문인데요. 에피소드 개수만 236개에 달하는 시트콤 '프렌즈'는 수십 번씩 돌려 볼 정도였답니다. 카투사에서 군생활을 하던 무렵, 미군들이 ‘세상에서 가장 웃긴 사람’이라며 보여준 데이브 샤펠의 코미디 DVD는 아직도 그의 사무실 한 켠에 꽂혀 있어요. 샤펠은 미국의 전설적 코미디언인데요. 흑인 정체성을 칼처럼 쥐고 ‘인종 권력’의 허점을 찌르는 개그를 주로 선보여 왔어요. 그의 말을 따라 한바탕 웃고 나면, 머릿속에 묵직한 질문이 남겨진다는 게 특징이죠.
“외국 코미디에서 유머를 다루는 감각들이 좋았어요.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위트의 가치’가 제대로 뿌리내리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대통령이 공적 자리에서 가벼운 농담 하나만 해도 욕을 먹는 곳이니까요. 국내에서 유일하게 위트를 테마 삼아 작품활동을 하시던 분이 장진 감독님이었는데요. 마침 그분이 tvN에서 방영하는 SNL 코리아 시즌1의 연출을 맡는다는 소식을 들었죠.”
신입사원 시절, ‘너 뭐 좋아하느냐’라는 상사의 질문에 ‘코미디 좋아합니다’라고 당당하게 답했던 그는, 꿈에 그리던 SNL 코리아 시즌2의 콘텐츠 마케팅을 맡게 됩니다. 영준씨가 말하길 신입사원 시절의 그는 침투의 달인이었어요. 한마디로 ‘들이미는 걸 잘했다’는 뜻이죠. 마케팅부였지만 촬영현장에 매번 출석도장을 찍었습니다. 오후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쉼 없이 찍는 마라톤 촬영이 있을 때도 밤새 현장을 지켰어요. 출연자, 작가, 감독 할 것 없이 모두가 알아볼 때쯤 되자, 어느 날 PD가 그를 편집실로 불렀죠. “다음 주 방송분 가편집본이 나왔는데, 영준님이 한번 봐주실래요?” 미방영분까지 턱턱 보여주며 영준씨의 피드백을 구했죠. ‘들이밀기’의 기술을 끈질기게 발휘한 끝에, 그토록 좋아했던 코미디 프로그램의 첫 번째 시청자가 된 겁니다.
“그때, 시즌3 방영을 앞두고 처음으로 페이스북 마케팅을 건의했어요. 당시만 해도 SNS로 마케팅을 한다는 개념 자체가 낯선 때였거든요. 조사를 하다 보니, 젊은 2030시청자들을 제대로 포섭하지 못했더라고요. 그래서 사용자가 급증하고 있던 페이스북을 이용해야겠다고 판단했죠. SNL을 좋아할 것 같은 사람들에게 정확하게 도달하기 위해서요.”
누구도 건드려보지 않았던 페이스북을 하겠다니, 반대도 적지 않았습니다. ‘성공한 전례가 없다’느니 ‘아직은 트위터가 대세’라느니 온갖 걱정과 우려가 난무했죠. 전담 인력 없이 혼자 해보겠다는 그의 말에 어렵게 조건부 허락이 떨어졌어요. 그런데 반응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뜨거웠습니다. 재치 넘치는 포스팅에 팔로어 수가 폭발했고, 계정의 구독자 수는 단숨에 10만을 찍었죠. 영상 조회수는 500만까지 올랐고요. 입사 1년도 되지 않은 그에게 ‘SNS 마케팅 강연 요청’이 들어올 정도였다고 해요.
보통은 ‘내가 이걸 잘한다’ 싶으면, 옳다구나 그것만 파잖아요? ‘반골 기질’이 다분했던 영준씨의 경우는 달랐다고 해요. ‘잘한다’는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기 시작하니까, 오히려 완전히 다른 걸 배워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가 선택한 다음 행선지는 ‘광고팀’이었어요. 마케팅팀에서 ‘돈 쓰는 일’을 해봤으니, 이젠 ‘돈 버는 일’을 배워 비즈니스 감각을 키워야겠다는 속셈이 있었죠.
“광고팀에선 콘텐츠 안에 PPL이라 불리는 간접광고를 자연스럽게 녹이는 일을 했어요. 전 PPL이 미디어와 시청자가 함께 참아내는 시간이라고 생각했어요. ‘얘들아, 이거 약속이다? 잠깐만 참아줘! 우리도 돈 좀 벌자!’ 하고 간접광고를 털기 시작하면 시청자는 ‘그래, 나 이거 공짜로 보고 있으니 좀 참아줄게’ 하고 버티는 시간. 광고라는 게 다 그런 거잖아요? 근데 저는 그 시간을 좀 덜 피로하게, 덜 괴롭게 만들고 싶은 거예요.”
당시 쇼미더머니 시즌 4를 맡았던 영준씨는 메인 스폰서였던 아디다스와 기아자동차에 색다른 광고 아이템을 제안해요. “원래대로 하면 ‘지금부터 광고입니다~’ 하는 장면을 꼭 넣어야 해요. 이를테면 이런 거죠. 프로그램 중간에 뜬금없이 아디다스 매장에 가요. ‘30분 줄 테니 다 골라와. 다 사줄게’라고 말하면 참가자들이 막 환호하며 쇼핑을 해요. 거울 앞에서 운동화도 신어보고 옷도 입어보죠. 그러면 카메라가 브랜드 상표를 쭉 훑어 줘요. 전 그런 장면이 너무 참기 힘든 거예요.”
대신 영준씨가 제안한 건 아디다스와 기아자동차만을 위한 비트를 만들어 ‘음원 미션’을 내는 것이었어요. 우승자의 작품은 브랜드의 광고 음악으로 제작하고, 뮤직비디오까지 만드는 게 PPL의 조건이었죠. 스폰서의 제품을 직접 노출시키는 데 급급하기보단, 힙합 서바이벌이라는 프로그램의 맥락 안에 ‘녹아들 수 있는’ 광고안을 만든 겁니다. 광고에도 콘텐츠 만들 때의 영혼을 실으니 시청자들의 반응이 특히 좋았죠.
“이런 기획안을 만들면, 엄청나게 손이 많이 가고 품이 들어요. 담당자가 제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바뀌면 바로 사라져 버리죠. 창작자로서의 감각이 없는 사람에겐 힘든 아이템이거든요. 신기한 게 저는 항상 ‘손 많이 가는 걸’ 만들어 왔더라고요. 똑같이 돈을 버는 거면, 훨씬 품이 덜 드는 방법을 찾아가는 게 상식이잖아요? 근데 저는 늘 비효율을 찾아가는 스타일이었어요.”
어쩌면 영준씨는 본능적으로 알았는지도 모릅니다. 투자 대비 효율이나 가성비에 매몰되면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시도하긴 어려워진다는 걸요.
2016년, YG엔터테인먼트는 안영미와 같은 예능인들을 새롭게 영입하며, 영준씨에게 러브콜을 보냈습니다. 가수 기획만 해왔던 회사니, 코미디 생태계의 흐름을 아는 사람의 조언이 필요했던 거죠. 영준씨가 YG에서 만든 팀의 이름은 무려 ‘코.미.디.팀’이었는데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팀 이름에 코미디가 뭐냐’는 잔소리부터 ‘촌스럽다’, ‘너무 정직해서 없어 보인다’라는 직설까지... 이번에도 말이 참 많았습니다.
말도 탈도 많았던 이 ‘코미디팀’에서 영준씨는 운명의 짝꿍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코미디언 유병재씨였죠. 그는 몇 마디 가벼운 말로도 사람들을 웃겨 쓰러뜨리는 알찬 내공의 소유자였어요. 페이스북에 자주 올리곤 했던 ‘유병재식 농담’은 찰진 ‘말맛’을 자랑했죠. 일침과 풍자를 녹인 말장난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습니다. 눈 밝은 영준씨에게 그 재능은 마치 심지처럼 보였습니다. 불만 붙여주면 활활 타오를 수 있는, 그러나 아직은 조용히 가능성을 숨기고 있는 마른 심지.
“수십 년을 코미디만 미친 듯이 보니까, 어떤 사람을 보면 ‘아, 얘 이거 잘하겠네’ 하는 감이 올 때가 있어요. 병재씨를 보고는 ‘스탠드업 코미디’를 떠올렸죠.”
가수 지디가 프로듀서 테디와 함께 곡을 만들 듯이, 영준씨는 병재씨와 함께 ‘스탠드업 코미디’ 제작에 뛰어들었어요. 그때만 해도 스탠드업 코미디는 한국에선 누구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생소함 그 자체’인 장르였다고 해요.
“첫 번째 회사를 퇴사할 때쯤, 재미로 ‘코미디의 정석’이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든 적이 있어요. 거기에 외국 스탠드업 코미디에 한글 자막을 단 영상을 올렸는데,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와, 이거 뭐냐, 너무 웃기다면서. 그래서 저는 국산 스탠드업에도 가능성이 있다고 봤어요. 마침 유병재씨에겐 확실한 재능이 있었고요.”
영준씨는 관객이 딱 400명 들어가는 소극장을 빌렸습니다. 광고 비즈니스 업무를 할 때, 스스로 세운 철칙을 따랐죠. ‘규모는 작게, 적자 없이 시작한다.’ 세트, 소품, 무대연출까지 모두 영준씨가 직접 맡았습니다. 병재씨가 써 온 대본 초안을 함께 고치며 창작 파트너 역할까지 자처했어요. 병재씨가 작곡을 하면, 영준씨는 편곡을 하는 수준으로 함께 대본을 완성해 나갔죠. 그 과정에서 '매니지먼트'란 곧 '파트너십'이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병재씨랑 저는 만화가와 편집자 같은 관계였어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만화 '바쿠만'은 만화가 지망생 소년들의 성장 스토리를 담은 작품인데요. 만화가에게 편집자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가 나와요. 어떤 편집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만화의 퀄리티, 작품의 운명이 바뀌어 버리죠. 아직도 일하다 보면 그 대목이 떠올라 가끔씩 펼쳐보곤 해요."
2017년, 작은 소극장에서 시작한 병재씨의 스탠드업 공연 '블랙코미디'는 유튜브에 업로드되자마자 ‘100만’ 조회수를 기록했습니다. 곧바로 넷플릭스로부터 러브콜이 왔죠. 스폰서를 받아 제작한 후속 공연은 1,300석 대공연장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열었어요. 1분 만에 3회 공연 전석이 매진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죠.
“그 기세를 몰아서, YG엔터테인먼트 안에 코미디 레이블을 꾸리고 싶었어요. 눈여겨보고 있던 코미디언들을 영입해 코미디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죠. 유튜브로 무대를 넓혀 보고 싶기도 했고요. 하지만 회사랑 생각이 맞지 않았어요. 어쩔 수 없었죠. 그렇다면 나가서 해야겠구나.” 2019년, 그렇게 그는 3년을 몸담았던 YG를 떠나 다음 정거장인 MCN ‘샌드박스’로 가게 됩니다.
2019년은 콘텐츠 주 무대가 유튜브로 옮겨 가던 시대였어요. 웃찾사는 폐지된 지 오래, 개콘 역시 저조한 시청률 속에 완전히 명맥을 다해가고 있었죠. “신기한 게, 당시 유튜브 생태계를 보면 코미디 쪽이 완전히 비어 있었어요. 이 공백을 어떤 사람들로 채울까. 그게 회사의 고민이자 저의 고민이었고요.” 영준씨는 젊은 개그맨들이 모여드는 홍대 소극장을 찾아다녔습니다. 웃찾사와 개콘에서 방생된 코미디언들을 모아 밥 사주고, 술 사주며 고민을 들어줬죠. ‘유병재 스탠드업 코미디’로 홈런을 쳤던 영준씨는 그들에게 이미 유명 인사였거든요.
“곽범, 이창호씨의 만담 공연 ‘까브라더쇼’에 처음 갔을 때가 안 잊혀져요. '와, 너무 잘한다, 얘네 천재다' 싶더라고요. 그다음 주에 병재씨를 데려가고, 또 그다음 주엔 유튜버 장삐쭈씨를 데려가서 세 번을 연달아 봤어요. 그 정도로 좋았죠. 그런데 갈 때마다 관객이 스무 명도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제안했습니다. 유튜브라는 새로운 판 위에서 ‘제대로 놀아보라’고요. 개그맨 이용주, 정재형, 김민수씨가 함께 만든 ‘피식대학’ 역시 비슷하게 시작됐죠.
한편 MCN에 몸담을수록 영준씨는 갈증을 느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MCN은 유튜버들을 크리에이터가 아니라 하나의 ‘채널’로 보거든요. 창작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파트너의 역할보단, 채널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즈니스'로서의 비중이 더 컸죠. ‘매니지먼트의 본질은 창작 파트너가 되는 것이다’라고 믿는 영준씨의 소신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재능을 다루는 일을 할 때, ‘비즈니스’ 관점만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돈 벌까’만 생각하면, 그 사람의 10년지대계, 20년지대계를 도울 수 없어요. 코미디언이 가진 예술성과 창의성, 상업적 가능성을 함께 봐 줄 수 있어야 하죠. 그래야 그 사람의 커리어가 하강하는 순간에도 그걸 같이 띄워볼 수 있는 원동력이 생기고요. 하지만 여러 회사를 다녀보며 깨달았죠. 이런 생태계는 내가 직접 만들지 않는 이상 절대로 그냥 만들어지지 않겠다는 사실을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분들 천재인 것 같아요.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고 대단한 사람=코미디언들ㅠㅠㅠ’
피식대학의 유튜브 콘텐츠를 보면 이런 댓글이 유독 많아요. ‘어떻게 작가, 연기자, 연출가가 한 몸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지 그저 감탄만 나온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죠. 피식대학의 장수 인기 코너 ‘한사랑산악회’를 예로 들어볼까요? 거친 동남 방언을 구사하며 ‘해병대 이력’을 자랑하는 독불장군 회장 아저씨부터, 교포 출신인 걸 동네방네 소문내 놓고도 자신 있게 엉터리 영어를 쓰는 LP 바 사장 아저씨까지. ‘페이크 다큐’에 가까울 정도로 대한민국 60대 아저씨들의 전형을 사실적으로 복원해냈죠.
60대를 연기하지만 코미디언들의 실제 나이는 대부분 30대거든요. 그런데 탑골공원에서 찍은 영상을 보면, 길에서 장기를 두는 비슷한 나이대 아저씨들이 그들을 스스럼없이 ‘또래’로 대해요. 그만큼 이 캐릭터들에 ‘위화감’이 없다는 뜻이죠.
영준씨는 ‘남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요. 이것이 ‘메타코미디’의 역할이죠. 공개 코미디 시대에는 콘텐츠의 제작 권한을 방송사 PD나 작가가 갖고 있었지만, 지금은 달라요. 코미디언들이 직접 플롯을 짜고, 캐릭터를 설계하고, 세계관을 건설하죠. 이들이 가진 기획력, 구상력, 연기력이 입체적으로 발휘될 수 있는 환경이에요. 이 과정에서 영준씨의 몫은 ‘진두지휘’하거나 ‘감독’하는 게 아니라, 필요할 때 조미료를 쳐 주는 조력자의 역할이라고 해요. 리드하는 게 아니라, ‘파트너’가 되어주는 겁니다.
“콘티를 짜는 것부터, 의상과 소품을 준비하는 것까지 모두 코미디언들이 직접 해요. 대강의 설정만 짜두고 촬영장에 나가거든요. 현장에서 연기하면서 즉흥으로 채워 넣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저 역시 촬영을 따라가서 이런저런 피드백을 아끼지 않죠.”
영준씨는 이들의 사무실이나 스튜디오에 ‘옆집 친구네 놀러 가듯’ 자주 방문한다고 해요. 기획 회의가 열릴 때면, 팀의 일원이 되어 참여하죠. 실제로 그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캐릭터가 하나 있는데요. 바로 ‘김갑생할머니김’의 재벌 3세 이호창(이창호 역)입니다. 지난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죠.
“피식대학의 ‘B대면 데이트’ 시리즈가 한창 카페 사장 최준(김해준 역)으로 인기몰이가 되던 때였어요. 대적할 만한 캐릭터가 등장해야 할 타이밍이었죠. 바보 같은 재벌 캐릭터가 나오면 재밌을 것 같았어요.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알고 엄청 거들먹거리는, 또 자기 자신의 멋짐에 지나치게 취해 있는 '본부장님'으로 가자고 제안했죠. 그때 마침 불현듯 떠오른 게 ‘김’이었어요. 아, 김 재벌 하면 웃기겠다. ‘김갑생’이라는 회사명도 창호씨의 실제 할머니 성함이거든요. ‘Gim for Prime Life’라는 회사 슬로건도 김 공장 촬영가는 길에 그냥 툭하고 나온 아이디어였어요. 눈치채셨겠지만, ‘갑생(甲生)’이라는 한자어에서 그대로 따온 거예요.”
김 재벌 이호창 캐릭터는 카페 사장 최준에 준하는 인기를 몰았어요. 팬들이 ‘극성’으로 과몰입을 해준 덕에 나중엔 ‘시가 총액 500조, 코스피 1위 기업'이라는 설정까지 추가됐죠.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의 신년사를 패러디한 영상은 지금도 피식대학의 '레전드 전당'에 올라가 있고요.
메타코미디는 총 3개의 조직으로 나뉘어 있어요. 아티스트(artist) 매니지먼트, 비즈니스(business) 매니지먼트, 그리고 크리에이티브(creative) 매니지먼트죠. 아티스트 매니지먼트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아는 로드 매니저의 일이에요. 연예인의 모든 스케줄을 따라다니며 관리하는 현장직이죠. 비즈니스 매니지먼트는 광고 제의나 비즈니스 문의를 조율하는 일이고요. 이 두 가지 직무는 다른 연예기획사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죠. 특이한 건 세 번째, ‘크리에이티브 매니지먼트’인데요. 이들은 영준씨가 지난 6년간 해왔던 것처럼 코미디언들의 ‘창작 파트너’로서 일한다고 해요. 소속 코미디언들이 새로운 코너나 캐릭터를 구상할 때, 그들 옆을 지키며 피드백과 제안을 아끼지 않는 역할이죠.
“소속 코미디언들이 기획 회의를 하다가, ‘어? 이 부분은 약간 애매한데?’ 싶으면 크리에이티브 매니저들을 불러요. 새로운 채널을 추가로 만들어보고 싶은데 도움이 필요하다? 바로 같이 의논하죠.”
실제로 숏박스는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했어요. ‘웃낌표’로 활동하던 코미디언 김원훈, 조진세씨가 스케치 코미디 도전을 고민할 무렵 영준씨가 ‘새로운 채널로 시작하라’고 조언했다고 해요. 별다른 반응도 없는 영상을 묵묵히, 꾸준히 올리던 어느 날, '장기 연애편' 영상이 인기 급상승 동영상에 오르며 채널 구독자 수가 로켓 성장했죠.
“중요한 건 우리가 함께 성장한 관계라는 사실인 것 같아요. 무명 시절부터 엄청난 사랑을 받게 된 지금까지, 모든 순간을 다 함께 했으니까 사이가 돈독해질 수밖에 없죠.”
‘좋은 농담이란 무엇인가?’
벌써 12년째, 코미디 일을 하고 있지만 영준씨는 아직도 어렵다고 합니다. 왜냐. 코미디란 ‘양날의 검’이거든요.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자신의 손이 다칠 수도 있는 위험한 무기죠. 맥락을 조금만 놓쳐도 엉뚱한 곳을 찔러 엄한 이들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고요. 어설픈 농담은 ‘비웃음’이나 ‘조롱’으로 흘러가기 쉬워요. 실패한 농담은 때때로 파국을 빚기도 합니다.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사회자 크리스 록이 배우 윌 스미스에게 ‘실시간 폭행’을 당한 장면이 대표적이죠.
“30대 초반에 갑자기 탈모가 생겼는데, 그때부터 대머리 개그가 하나도 안 웃긴 거예요. 그 전엔 대머리를 멸시하는 농담이 그렇게나 많은 줄 몰랐죠. 사람마다 각자 서 있는 지점에 따라 ‘불편함’을 느끼는 척도가 다 달라요. 그러니 '불편하지 않은 코미디를 만드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에요. 유병재씨와 함께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면서도 상처가 많았어요. 잘 만든 농담은, 탄탄하게 짜여진 맥락 위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건데, ‘일부분’만 오려내 욕을 퍼붓는 사람이 많았거든요. 하지만, 저는 이마저도 필요한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일이 아무리 어려워도 그만하거나 포기할 생각은 없으니까요.”
그래서 영준씨는 오늘도, 치열하게 고민하며 웃음과 불편함의 경계를 찾아 나섭니다. 일단 ‘웃기는 걸’ 제대로 하다 보면, ‘노련하고 멋지게 웃기는 방법’ 역시 찾아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고대하면서요.
마지막으로 그에게 ‘일의 재미’를 물었습니다.
“얼마 전에 고등학교 동창회에 갔는데요. 제 친구 중에 의대에서 교수를 하는 수재가 한 명 있어요. 그 친구가 묻더라고요. ‘영준아, 너는 일이 재밌냐?’ 0.1초도 고민 안 했던 거 같아요. ‘솔직히 재미없다고 말하면 거짓말인 거 같아. 재밌어’라고 대답했어요. 친구가 한숨을 푹 쉬며 ‘부럽다’고 하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까지 나에게 일이란, 재미와 동의어였구나. 그러니 도저히 분리해서 생각할 수가 없는 거죠.”
영준씨가 세상에 끊임없이 농담을 권하는 이유는 단순히 ‘재미’ 때문만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는 ‘코미디란 분출구’라고 말해요. 오직 농담만이 분노와 혐오, 비방과 대립으로 팽팽해진 세상의 표면에 구멍을 뚫어 ‘압력을 빼는 역할’을 해줄 수 있다고 믿고 있죠.
“저는 웃음이 없으면, 세상이 영영 분노로 가득 찰 것 같아요. 물론 저희도 실패할 때가 있겠죠.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할 거예요. 우리의 일은 세상에 더 많은 웃음을 만드는 거니까.”
그는 상상합니다. 사람들이 더 자주 웃는다면, 농담 앞에 조금 더 관대해진다면, '웃어넘기는 것'이 삶의 비극에 대처하는 가장 슬기로운 방법임을 더 알게 된다면, 그리하여 모두가 한 발자국씩 더 '유머 친화적'인 세상에 다가간다면, 지금보다 조금은 더 사는 재미가 나지 않을까? 그런 날들에 닿기 위해 오늘도 그의 웃음 공방은 바쁘게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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