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과 지방선거 참패를 겪은 정의당이 '비례대표 국회의원 총사퇴'를 둘러싼 소용돌이에 빠졌다. 현직 비례의원들의 총사퇴로 위기에 빠진 정의당의 강력한 인적 쇄신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며 '당원총투표' 실시를 위한 당원 서명 작업에 돌입하면서다.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비례의원에게 한정한 것을 두고 형평성 논란이 나오는 가운데 지난 10년간 사실상 당을 이끌었던 '심상정 책임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당 재건 역할을 맡고 있는 한석호 정의당 10년 평가위원장은 11일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1기 정의당 실패는 심상정 노선의 실패"라며 '심상정 책임론'을 꺼내들었다. 한 위원장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핵심 책임은 2년 활동한 비례의원보다도 10년 동안 당을 이끌어왔던 심상정한테 있다"며 "누구 사퇴하라는 식의 접근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당내 일각의 비례 국회의원 총사퇴 주장을 반박했다.
정의당은 지난 9일부터 현역 비례의원 총사퇴를 요구하는 당원총투표 발의 서명을 진행 중이다. 다음 달 7일까지 당직선거 투표권을 가진 당원(1만8,000여 명) 가운데 5%인 약 910명 이상이 서명에 참여하면 총투표안을 발의할 수 있다. 총투표에서 당원 20% 이상이 재적해 과반 찬성을 얻으면 사퇴를 '권고'할 수 있지만 사퇴를 강제할 구속력은 없다.
비례 총사퇴를 요구하는 측은 쇄신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잇단 선거 배패에 책임 있는 현직 의원(류호정 장혜영 강은미 배진교 이은주 의원)들이 사퇴하고, 지난 총선 당시 비례대표 다음 순번(6~10번) 인사들이 승계할 것을 주장한다. 당원총투표를 추진하고 있는 정호진 전 수석대변인은 "현직 비례의원들이 총사퇴하는 인적 쇄신이 당 쇄신에서 가장 큰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비례의원들은 반발하고 있다. 비상대책위원장인 이은주 의원은 10일 페이스북을 통해 "'사퇴가 곧 책임지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며 "당의 도약과 위기 극복을 위한 제 책임과 역할을 다 하기 위해 더 헌신하겠다"며 사퇴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당 안팎에선 책임 소재를 지역구 의원과 비례의원들로 구분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비례의원인 류호정, 장혜영 의원을 겨냥했다는 분석이 있다. 앞서 당내 정파인 '새로운 진보' 측은 "정의당이 '노동자와 시민'의 이해가 아닌 '페미'의 이해를 대변했기 때문에 위기에 빠졌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정의당이 노동을 대변하지 못한 채 이른바 젠더와 소수자 문제에 함몰돼 있지 않았느냐는 지적이다. 장 의원은 이에 대해 "정의당의 현 상황은 노동도 페미도 못 했기 때문에 빚어진 것"이라며 "이런 방식의 희생양 찾기가 당 재도약에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라고 맞섰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임기 중 당원총투표를 진행한 데 대해 당원이 아닌 일반 유권자들을 납득시키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 것"이라며 "정의당은 왜 지지율이 지지부진한가에 대한 근본적인 진단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어서 이 교수는 "정의당에서 그동안 선거의 비례성을 높이자고 주장해 왔는데 지역구 의원이라고 심상정 의원을 제외한 것 역시 모순"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