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가 이준석 대표에게 '당원권 정지 6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내린 건 그렇게 충격적인 일이 아니다. 그동안 이준석 대표와 윤핵관, 안철수계 사이에 있었던 갈등에 비추어보면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일각에선 "사실이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의혹만으로 당 대표를 징계하는 경우가 어디 있냐"며 항변하지만 그 사실이라는 건 처음부터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만일 이 일이 없었다면 다른 사건을 엮어서라도 이준석 대표를 내쫓으려는 움직임은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준석 대표를 향해 제기된 의혹들은 그게 원인이 되어 징계로 이어진 게 아니라, 징계로 가는 길목에 필연적으로 놓일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었던 셈이다.
이준석은 왜 징계를 받게 되었는가? 그 원인으로 윤핵관 세력과의 갈등이나 2024년 총선의 공천권 다툼이 주로 꼽힌다. 그러나 그 저변에는 보수정당의 향방을 둘러싼 의제의 충돌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 1월 11일자 "윤석열의 '이대남' 향한 구애, '올드보수'에 달렸다"라는 칼럼에서 현재 보수정당은 "전통 지지층인 60대 이상과 이준석의 공정·능력주의 담론을 따르는 청년들이 이재명 후보에게 맞서기 위해 일시적으로 연대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썼다. 실제로 두 세력의 충돌은 대선은 물론 얼마 전 경기도지사 경선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최근 국민의힘에서는 20대부터 50대까지의 여론을 등에 업은 후보와 6070 당원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 후보 간의 경쟁이 계속 벌어졌다. 그리고 결과는 대부분 후자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이 대표가 물러난다면, 남은 정치인들의 면면이나 지지 세력의 구성으로 봤을 때 국민의힘이 추구하는 의제는 과거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이들이 단지 반공·자유주의에 집착하는 낡은 보수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건 지금껏 이준석이라는 정치인이 던졌던 화두들, 그 이슈를 만들어내는 생산 능력 자체가 상실된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3연승에 한껏 고무된 이들은 이준석을 대체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을지 모르겠으나 제3자의 눈으로 봤을 때 국민의힘에서 이준석의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인물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근래에 여야를 통틀어서 이준석만큼 민생 이슈에 기민하게 대응한 사람은 없었다. 이건 그에 대한 비호감도나 비판과는 별개다. 그가 가진 강점은 일반인들의 상식선에서 판단하고 의제를 발굴한다는 것이다. 물론 공격적인 화법으로 호불호가 갈리는 점은 있다. 하지만 그가 당 대표로 있는 보수정당에선 최소한 종북몰이나 탄핵 무효, 부정선거처럼 비상식적이고 터무니없는 주장들이 나오지는 않는다.
게다가 그는 평범한 시민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정확히 간파해서 이슈로 키울 수 있는 능력과 영향력을 갖추었다. 지난 대선 당시 불거졌던 광주 복합쇼핑몰 문제나 최근까지 계속되고 있는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가 그렇다. 정치권에선 그 이슈들을 놓고 이준석이 혐오를 조장하네, 갈라치기를 하네 하며 비판하지만 사실 양당의 정치인들은 모두 그에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애초에 그 이슈들에 관심도 없다가 이준석이 논란을 띄우니 부랴부랴 참전하지 않았나. 올해 두 번의 선거에서 청년과 호남 유권자들이 역대 최다 득표로 보수정당을 지지했던 건 그런 게으른 정치에 대한 경고였다.
이 대표에 대한 징계 발표 이후 인터넷에선 아니나 다를까 과거 자유한국당 시절의 영상들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예컨대 정치인들이 극우 기독교인과 손잡고 부정선거를 외친다든가 여성들이 여성 행사에서 바지를 벗고 엉덩이춤을 추는 퍼포먼스를 선보인다든가 하는 것들이 그렇다. 이런 걸 보면 이준석이라는 기능의 상실은 국민의힘엔 위기, 더불어민주당엔 기회임이 틀림없다. 물론 현재 민주당에서 표출되고 있는 갈등의 수준을 보면 그 기회를 살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