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남쪽의 베스트바이 블라섬 힐 매장. 집에서 챙겨온 줄자로 여러 브랜드 냉장고 길이를 재며 비교하던 리치씨를 만났다.
"숙모 집 냉장고 수명이 다했다는 연락을 받고 곧바로 여기 왔어요. 인터넷 주문이 낫지 않느냐고요? 아니요. 가전제품은 직접 보고 만져보는 게 가장 중요해요." 20분을 더 살피고 따지던 그는 결국 월풀 제품을 선택했다. "오늘 안에 배송해 준대요." 리치씨는 값을 치르곤 매장을 나섰다.
베스트바이는 한국으로 치면 롯데하이마트와 같다. 생활가전에서부터 스마트폰까지 모든 전자기기를 취급하는 미국 최대 전자제품 판매 체인이다. 미국인 70%가 베스트바이 매장에서 10마일(16㎞) 안에 살고 있다고 할 정도로, 월마트 못지않게 미국인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베스트바이는 미국의 소매시장을 석권한 '유통 공룡' 아마존의 공세를 버틴 몇 안 되는 업체 중 한 곳이다. 경쟁업체인 서킷시티, 라디오 쉑, HH그렉 등은 줄줄이 문을 닫았지만, 베스트바이는 오히려 매출과 이익을 동시에 높이며 업계 1위를 굳혔다.
망하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웠을 베스트바이의 성장세는 미국 유통업계에서도 특이한 사건이다. 아마존이 책, 의류, 전자제품, 가정용품 등 모든 소매시장을 싹쓸이 한 시대에, 베스트바이는 어떻게 혼자 살아남았을까.
그 비결로 첫손가락에 꼽히는 것은 시장 변화에 맞춰 옴니채널(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상품을 찾고 구입하는 서비스)을 성공적으로 구축했다는 점이다. 베스트바이는 온라인 주문이 들어오면 최단시간 내 배송 가능한 매장에서 배송을 담당한다. 오후 2시 이전에만 주문하면 당일 오후 8시까지 받을 수 있다. 소비자가 직접 와서 받을 수도 있는데, 매장에 들어가지 않고 차에 탄 채로도 가능하다.
실제 베스트바이 매장을 가보면 판매점과 물류센터 기능을 겸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7일 찾은 베스트바이 지점 3곳에서는 매장인지 창고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로 전시용 제품과 제품 박스가 얽혀 쌓여 있었다. 한 직원은 "주문이 들어오면 여기 쌓여있는 박스 중 하나가 배송된다"고 했다.
빠른 배송에 더해 가격 경쟁력까지 갖춘 것도 성공 비결이다. 베스트바이는 2013년 최저가 보장을 시작했는데, 같은 제품을 아마존 등에서 더 싸게 팔면 그 가격에 맞춰준다. 아마존의 공세를 최저가로 받아친 덕분에, 오프라인 업체임에도 오히려 온라인 경쟁력을 확보했다. 온라인 매출 비중은 2017년 15.5%에서 지난해 34.4%로 2배 이상 늘었다.
제품 구매, 사용, 수리 등 전 과정에 걸친 도움을 제공하는 전문가 집단(긱 스쿼드)을 운영한 것도 경쟁력으로 꼽힌다. 베스트바이의 긱 스쿼드는 미국 내에서만 2만 명이 활동 중인데, 매장엔 긱 스쿼드 전용 상담 창구가 따로 있어 어떤 제품이 맞을지 판단이 안 서면 이들부터 찾아가면 된다. 365일, 24시간 전화 및 온라인 상담도 가능하다고 한다.
제조사가 직접 자체 매장을 여는 '숍인숍'도 2013년 도입했다. 애플, 삼성, LG 등 제조사들이 자사 제품을 마음대로 전시할 수 있도록 별도 공간을 내주고, 임대 수수료를 받는 방식이다. 숍인숍 비중을 늘려 인테리어에 드는 비용까지 아꼈다.
다만 베스트바이의 성장세는 한국보다 자유경쟁시장에 가까운 미국 시장의 특성에 힘입은 바도 없지 않다. 삼성, LG가 가전시장을 양분하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압도적 사업자가 없다. 시장조사업체 트랙라인 집계를 보면, 올 1분기 미국 생활가전 시장에서 금액 기준 1위에 오른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21%로 경쟁자인 LG전자(19%)·월풀(16.5%)과 큰 차이가 없다. 이렇게 다양한 브랜드가 존재하기 때문에, 한 곳에서 여러 브랜드를 비교할 수 있는 가전양판점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