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 옥수수 3개에 5,000원.’
지난 4일 강원 홍천군 길목마다 옥수수 가판대 앞에 차들이 줄지었다. 홍천에서 10년째 옥수수 농사를 지어온 최창현(60) 유진농원 대표도 이날 찜통에서 갓 쪄낸 옥수수를 비닐봉지에 담아 쉴 틈 없이 차창 너머로 건넸다. 최 대표는 “작년만 해도 코로나19 영향으로 오가는 이들이 없었는데, 최근 관광객이 부쩍 늘어나면서 옥수수가 잘 팔린다”며 싱긋 웃었다.
옥수수가 제철이다. 국내 옥수수 생산량 1위 홍천에서도 지난달부터 옥수수 출하가 본격 시작됐다. 홍천에선 통상 6월부터 10월까지 옥수수를 딴다. 통계청 자료(2020년 기준)에 따르면, 홍천 옥수수 생산량은 9,106톤으로 국내 옥수수 총생산량의 10%를 차지한다. 강원도로 국한하면 전체 생산량의 31.4%에 달한다. 표고 150~400m 중산간 지역과 서늘한 기후, 배수가 잘 되는 토양 등 재배에 유리한 자연환경을 갖춘 덕이다.
홍천에서 나는 옥수수 대부분은 찰옥수수다. 찰옥수수는 과거 재래종 옥수수의 딱딱하고 거친 단점을 보완해 1989년 '찰옥 1호'가 개발되면서 전국으로 퍼지게 됐다. 현재 주로 생산되는 찰옥수수 품종은 2005년 강원도농업기술원 산하 옥수수 연구소에서 개발해서 보급한 ‘미백 2호’다.
미백 2호는 우리가 흔히 맛볼 수 있는 ‘보통 옥수수’다. 길이 18㎝의 이삭(옥수수 단위)에 우윳빛 가까운 옅은 노란색 낟알이 균일하게 박혀 있고 껍질도 얇다. 흔한 품종이지만 맛은 끝내준다. 달착지근하면서도 고소하고 짭조름하다. 톡 터지는 식감과 동시에 쫀득쫀득한 찰기가 느껴진다. 탄수화물과 단백질, 식이섬유, 비타민 등 영양 성분도 풍부해 여름철 대표 간식으로 제격이다. 이혜종 강원도농업기술원 팀장은 “미백 2호 이후에도 다양한 품종이 개발되고 있지만 한국인이 질리지 않고 가장 즐겨 먹는 옥수수는 미백 2호"라고 추켜세웠다.
최근 몇 년 새 위기도 있었다. 외래종인 초당옥수수 인기가 높아지면서 찰옥수수 입지가 흔들렸다. 전남 해남과 제주 일대에서 주로 재배되는 초당옥수수는 일반 옥수수보다 당도가 두세 배 높다. 찜통에 삶지 않아도 날것으로 즐길 수 있어, 아삭아삭하고 가벼운 식감을 즐기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높은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초당옥수수 대부분은 외국 종자를 받아 재배하기 때문에 종자 가격이 비싸다. 재배 조건도 까다로워 발아율이 60~70% 정도로 낮다. 이 때문에 수급량이 고르지 않고 가격도 일반 옥수수보다 두 배 이상 비싸다. 옥수수계 전통 강자인 찰옥수수의 아성을 뛰어 넘으려면 아직 무리라는 얘기다.
홍천에서 재배되는 옥수수는 대부분 국내에서 소비된다. 홍천 3,639개 농가에서 옥수수를 재배해 벌어들이는 수익은 연간 168억 원이다. 하지만 농가 고령화 등으로 일손이 부족해 최근엔 옥수수 수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강원도에서 60세 이상 농가 인구 비중은 전체의 62.4%로 전국 평균(62.3%)과 비슷하다. 최 대표는 “옥수수는 잘 여물었는지 사람이 일일이 확인한 뒤 수확해야 하기 때문에 기계로 작업을 할 수 없다”며 “농가 고령화로 수확량에 한계가 있고, 수확해도 직거래가 아니면 소득을 올리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자료에 따르면, 최근 8㎏ 찰옥수수 평균 도매가격은 7,192원이다. 개당 200~300원인 셈이다. 소규모 농가들로서는 품삯은커녕 비료값도 안 나온다. 최 대표는 “비료값이 예년에 비해 2배 가까이 올랐다”며 “도매시장에 넘기면 출하량은 맞출 수 있지만 값을 제대로 받지 못해 직거래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홍천군도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농가 판로 개척을 위해 이달 29일부터 ‘홍천 찰옥수수 축제’를 연다. 500여 명의 대형 작목반을 구성해 옥수수 재배부터 수확, 출하까지 공동 작업을 통해 일손을 돕는다. 유통기한이 짧은 옥수수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옥수수 음료를 개발하고, 진공 포장 등을 통해 옥수수를 연중 공급하는 방안도 모색 중이다.
홍천군 관계자는 "친환경 인증 찰옥수수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국내뿐 아니라 미국 등으로 수출도 기대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