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 원료인 사탕수수는 역사의 잔혹한 아이러니가 담긴 작물이다. 달콤한 설탕맛에 빠진 유럽인들의 화사한 식탁을 채우기 위해 대규모 흑인 노예 노동이 동원됐기 때문이다. 그 파장은 우리 민족도 비켜 가지 않았다. 노예제 폐지 후 부족해진 사탕수수 재배 노동력을 메웠던 것은 아시아계 이민자들. 1902년 7,300여 명의 조선인들이 하와이의 사탕수수 농장으로 떠났다. 20여 년 뒤, 그들과 결혼하기 위해 18살의 어린 여성들이 남편이 될 사람의 사진 한 장 들고 고국을 떠났다. 하와이 이민 사회에서는 이들을 '사진 신부'라 불렀다. 신랑 신부가 사진 한 장만 갖고 결혼을 약속했다는 뜻에서다.
한국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중견 작가로 발돋움한 정연두 작가가 이달 5일부터 제주도 포도뮤지엄에서 공개한 설치작품의 제목이 '사진 신부'다. 100여 년 전 어린 나이에 고국을 떠난 '사진 신부'들이 마주쳤을 사탕수수밭의 풍경을 재현한 것이다.
제주도 중산간에 자리 잡은 포도뮤지엄 전시장에 들어서면 길다랗고 좁은 형상의 온실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목재와 폴리카보네이트로 지어진 온실에는 통로를 가운데 두고 사탕수수가 좌우로 자라고 있다. 작가가 지난 6개월간 제주에서 직접 길러낸 사탕수수들이다. 온실의 양 끝에는 디스플레이가 설치돼 서로 다른 영상을 재생한다. 왼쪽에는 온실을 짓고 사탕수수를 기르는 과정이, 오른쪽에는 제주 애월고 2학년 여학생들이 작가와 함께 8차례 진행했던 워크숍 모습이 떠오른다. 학생들은 '사진 신부'의 역사를 공부하거나 사탕수수의 섬유질을 걸러서 종이를 만드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친다. 두 영상의 시간대가 맞아떨어지는 순간들마다 온실 내부의 조명이 변하고 비가 오는 듯한 효과가 연출되기도 한다. 바깥에는 '사진 신부'들이 남긴 사진을 바탕으로 제작된 실물 크기의 설탕 조각이 놓여 있다. 얼굴은 애월고 학생들의 얼굴을 본 땄다.
정 작가는 그의 생각을 직접 글로 남기지는 않았다. 그러나 얼핏 과도하다 싶을 정도의 노동력이 투입된 창작 과정과 복잡한 장치가 유발하는 효과는 분명하다. 관람객은 사탕수수 사이를 거닐면서 신부들이 뜨겁고 광대한 사탕수수 밭에서 느꼈을 감정과 마주친다. 신부 조각품의 재료는 설탕이다. 작가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정 작가는 “애월고 학생들과 작업하면서 그들에게 어떤 방향과 지시를 직접 내리지는 않았다”며 “학생들이 120년 전 여성들을 이해하는 모습을 통해서 관람객들이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 세대와 공감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이 작품은 온실을 둘러보는 관객에 의해서 완성된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은 포도뮤지엄의 기획전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 중의 하나다. 이번 전시의 총괄 기획자인 김희영 티앤씨재단 대표는 "사회적 조건에 의해 주류, 비주류로 구분되기 이전에 수 많은 공통점을 가진 우리의 모습을 기억하고자 마련한 전시"라고 밝혔다. ‘사진 신부’ 뿐만 아니라 필리핀 이주노동자들이 해외로 보냈던 살림들을 벽돌처럼 쌓아올린 알프레도·이자벨 아퀼리잔 부부의 ‘주소’, 세계 이주노동자들의 이동 경로를 전깃줄로 지도처럼 표현한 리나 칼라트의 ‘짜여진 연대기’ 등도 이주 노동자들의 삶을 조명한다. 우고 론디노네의 ‘고독한 단어들’은 2층 전시장을 독차지한 대형 작품이다. 낮잠, 한숨, 꿈, 울음, 앉다, 일어서다 등 제각기 다른 이름을 가진 27명의 광대가 눈을 감고 저마다 다른 자세로 휴식하는 모습은 관객에게 고독과 연대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