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로 입양됐으니 감사하라고?"...분노로 풀어낸 시의 울림

입력
2022.07.08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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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덴마크 시인 마야 리 랑그바드
국가 간 입양에 대한 비판·솔직한 감정 담은
시집 '그 여자는 화가 난다' 한국어판 출간
"나를 비롯한 여러 입양인의 증언 모음집"
'여자는… 화가 난다' 반복에 독특한 리듬감

영화 '브로커'의 주인공 상현(송강호 역)은 베이비박스에서 훔친 아이를 양부모에게 건네고 돈을 챙긴다. 상현은 불법 입양으로 버려진 아이들에게 좋은 부모를 만나게 해주는 '선의'라고 말한다. 누가 봐도 궤변일 뿐이다. 그럼 가정을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국내 아동을 미국·유럽 등으로 보내는 입양은 어떤가. 불법은 아니니 '선의'라고 단순하게 말해도 될까.

한국계 덴마크 시인 마야 리 랑그바드의 시집 '그 여자는 화가 난다-국가 간 입양에 관한 고백'이 그 질문의 답이다. 하나의 장시(長詩)로 채운 이 시집의 시작은 이렇다. '여자는 자신이 수입품이었기에 화가 난다 / 여자는 자신이 수출품이었기에 화가 난다 / 여자는 어린이를 입양 보내는 국가는 물론 입양기관도 국가 간 입양을 통해 돈벌이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한국에서 덴마크로 입양된 랑그바드가 국가 간 입양 체계에 대한 분노를 원동력으로 펜을 들어 시를 완성한 과정이 한 눈에 보이는 대목이다.

그는 7일 서울 마포구에서 열린 출간 간담회에서 "국가 간 입양으로 아동은 많은 어려움을 겪지만 입양인으로서 항상 감사하기를 요구 받았다"면서 "국가 간 입양은 좋은 일이라고만 인식하는데 모두에게 이익만 안겨주는 일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고 집필 계기를 설명했다. 2014년 덴마크에서 첫 출간된 이 책은 '국가 간 입양은 선(善)'이라는 믿음에 균열을 냈다. 당시 해외 아동을 입양하려던 결정을 재고하거나 철회한 소식이 들려올 정도였다. 저자는 한국 사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한 이 글이 한국에도 출간되길 원했다고 한다. 그 바람이 8년 만에 이뤄졌다.

300쪽이 넘는 이 시는 '여자는...화가 난다'라는 구조를 반복한다. 작가는 여러 인물의 서사를 따라 소설처럼 읽을 수도 있는 이 시의 장르를 '하이브리드(복합적)'라고도 말한다. 반복된 구조 속에서 내용과 호흡, 리듬에 변주를 주며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싶었다는 게 그의 의도다. 추천사를 쓴 김혜순 시인은 이 시를 '입양 보낸 그들의 목구멍에서 쏟아지는 분노에 찬 비트', '그 비트에 얹은 세상에서 제일 긴 여자 힙합 아티스트의 래핑'이라고도 표현했다.

작가의 삶이 고스란히 반영된 시지만 개인적인 선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선 주어를 1인칭인 '나'가 아니라 '여자'로 설정한 것도 그런 이유다. 덴마크어로도 '그녀는'을 뜻하는 훈(Hun)이 주어다. 2007~2010년 한국에서 입양인 커뮤니티 활동을 하며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증언과 선언을 모은 일종의 '모음집'으로 '여자'는 다양한 인물을 대변한다. 랑그바드는 "나와 거리를 둬 공동의 이야기임을 말하고 싶었고 또 (국가 간 입양이) 젠더, 페미니즘 이슈임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자신처럼 여자라서 먼저 입양된 경우도 적지 않고, 비혼모나 싱글맘 등이 직접 아이를 키우기 힘든 사회구조적 문제와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시집의 사회 비판은 통렬하다. 저자는 입양기관이 국내 입양보다 국가 간 입양으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거나 입양기관이 출산 후 마취에서 완전히 깨어나지도 못한 미혼모들에게 국가 간 입양에 동의하는 서명을 요구하는 등의 부당한 일들을 고발한다. 작가는 "국가 간 입양이 정치·경제적 문제이고 식민지주의와 연결된다는 점을 깨달았을 때 분노했고 그 화는 글쓰기의 원동력이 됐다"고 했다.

아울러 솔직한 감정와 혼란스런 내면도 담았다. '여자는 분노하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다. / 여자는 분노하는 자신을 탓하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다……' 화의 대상이 자신일 때 느끼는 마음을 짐작케 하는 구절이다.

성소수자로서의 자아도 '여자'에 담았다. 2006년 처음 친부모를 만난 그는 "얼굴을 몰랐던 친부모를 오랜만에 만나는 일도 어렵지만 내 성정체성을 말하는 것이 한국에서는 아직 쉽지 않다고 느꼈다"며 다시 한번 소수자성을 생각해 봤다고 털어놨다. 그는 자신의 비주류성, 소수자성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보여주는 글쓰기를 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작가가 이 책을 한국에서 쓴 지도 10년이 넘게 흘렀다. 하지만 근본적 문제는 풀리지 않았다. "저출생 국가이고 부유한 나라인 한국이 아직도 아이들을 서양 국가로 보낸다는 게 이해가 안 갑니다." 이 책은 영화로 또 음악으로 높아진 국격에 감격하는 사회가 여전히 한편에선 아이들을 해외로 '팔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알린다.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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