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징계의 나쁜 유산

입력
2022.07.0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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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권 다툼 분기점 될 초유의 대표 징계
득실 계산만 넘쳐나는 게 정상인가
정치 윤리와 원칙 짚는 목소리 있어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에 대한 당 중앙윤리위 징계가 당권 다툼의 분기점이 될 것은 자명하나 징계가 남길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당권에 미칠 여파 분석만 넘쳐나는 반응에 질렸다. 징계가 중요한 것은 성비위를 바로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권의 향배에 미칠 영향 때문이라는 걸, 공공연히 당연시하는 정치 문화야말로 나쁜 유산으로 남게 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6일 "당은 다양성을 먹고 산다. 이 대표가 물러날 경우 다양성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며 "이 대표가 중도 사퇴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당으로서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의 성접대 의혹이나 증거인멸 시도에 대해선 언급 없이 징계의 득실만 따지는 이런 발언은 너무 흔해 오 시장을 탓하는 게 부당해 보일 정도다. 득실만 보는 것 자체가 문제지만 중징계를 우려하는 이유가 합당치도 않다. 이 대표가 기여할 다양성이란 그러니까 윤핵관, 아니 기성 보수 정치인에게 없는 대담한 조롱과 혐오 정치를 말하는 건가. 득보다 큰 실이란 20대 여성을 내쫓고 얻은 20대 남성 표인가.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는 6일자 경향신문 칼럼에서 이 대표의 토사구팽 위기를 '성공의 저주'라 했다. "싸가지가 없는 게 장점이자 매력"이어서 "젊은 세대가 국민의힘을 다시 보았고, 두 번의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동력이 되었"으나 그 독설과 조롱에 발목을 잡혔다고 썼다. 강 교수의 글을 애독해 온 나에겐 아쉽게도, 그는 현실을 반만 보고 있다. 독설과 조롱은 분명 이 대표의 강력한 정치 도구이나, 환호한 것은 젊은 세대가 아닌 젊은 남성이었다. 여성 다수는 국민의힘을 '5·18 광주민주화를 비하·왜곡하는 정당'에서 '여성을 혐오·배제하는 정당'으로 다시 보았다. 강 교수가 궁금하다는, 이 대표에 대한 당내 반감이 그토록 쉽게 확산된 이유는 그가 "대선·지선의 1등 공신"이 아니라 크게 이길 대선을 질 뻔하게 만든 인물이기 때문이다. DJ의 멍에, 호남 차별을 앞장서 비판했던 강 교수는 이 대표의 당당한 장애인·중국인·여성 혐오를 예민하게 볼 법한데 '호남 끌어안기'만 높이 평가할 뿐이니 한탄스럽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라디오에서 "경고 이상(당원권 정지·탈당 권고·제명)을 때리면 국민의힘이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며 "민주당을 상대로 싸울 수 있는, 싸움을 할 줄 아는, 공중전을 벌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에 공격수가 없다. 공격수라는 건 반칙도 쓸 줄 알아야 하는데 (박민영 대변인은) 공격수는 아닌 것 같다"고도 했다. 아니, 이 무슨 '짤짤이' 최강욱 의원 징계에 '최전방 공격수를 스스로 제거하는 뻘짓'(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같은 소리인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비롯해 상대를 가리지 않는 진씨의 모두까기가 통렬했던 것은 반짝이는 말의 힘만이 아니라 일관된 원칙의 힘이었다. 원칙은 찾아볼 수 없고 득실 분석만 남은 그는 지식인이 아닌 정치평론가가 되어버렸고 나는 그것이 못내 애석하다.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뻔뻔하게 징계 부담을 논하기 앞서 당대표의 성비위 의혹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의혹의 실체 규명보다 계파의 득실 분석에만 골몰하는 언론은 역할을 방기하고 있다. 지식인이라면 정치인의 윤리를 지적해야지 그의 정치생명을 걱정해선 안 된다.

우리가 높이 평가해야 할 정치인은 권력을 잡기 위해 신선한 전술을 구사하는 이가 아니라, 권력을 통해 의미 있는 가치를 실현하려는 이다. 환호할 세대교체는 정치인의 나이가 아니라 그가 대변하는 가치가 새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다. 아무리 현실이 그렇다지만 이런 원칙을 짚는 목소리가 실종되고 무시되는 것이 안타깝다. 이준석 징계 국면에서 드러난 한국 정치의 그늘이다.




김희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