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은 아이의 영재성이 국내에서 소화되지 않을 때 택해야 합니다. '보내면 뭐라도 되겠지' '한국보단 낫겠지' 이런 생각으로 보내면 절대 안 됩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자녀와 처조카들의 '편법 스펙' 논란이 불거진 뒤, 국내 유학업계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긴장하는 분위기도 엿보였지만 의외로 덤덤했다. "한국 유학 문화의 병폐가 일부 드러났을 뿐"이란 자조 섞인 평가가 많았다. '압구정발 스펙'을 급조해서라도 미국 명문대 간판을 얻겠다는 욕망은 한국 학부모들 사이에선 이미 오래된 이야기로 통하기 때문이다.
강영실 성균관대 교양기초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한국 학부모들의 이 같은 비뚤어진 인식을 일찍부터 체감한 유학 교육 전문가로 꼽힌다. 그는 미국 컬럼비아대 교육학 박사 출신으로, 1995년부터 미국에서 교육업체를 운영하며 한국의 대기업 간부와 국회의원, 병원장 자녀 등의 유학 생활을 밀착 관리한 경험이 있다.
4일 서울 용산구 사무실에서 만난 강 연구원은 한국의 유학 문화에 대해 할 말이 많았다. 그는 "최근 불거진 스펙 논란을 떠나, 이제는 병리적 수준에 도달한 유학 문화의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점검해봐야 한다"며 "부모의 욕심과 착각으로 시작한 자녀 유학이 왜 비극으로 끝나는지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강 연구원은 배척해야 할 도피 유학 형태부터 짚었다. 그의 경험에 따르면 부유층 자녀들의 도피 유학 배경은 크게 가정 불화와 국내 입시 경쟁 부적응으로 나뉜다. 그는 "부모가 포기한 아이들을 외국에서 제3자가 맡아주길 바란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며 "이렇게 떠난 아이들은 십중팔구 '부모가 날 버렸다'는 원망 속에서 더욱 망가진다"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부모들은 착각을 멈추지 않는다. 외국의 '좋은 물'에서 생활하다 보면 자녀 인생이 크게 달라진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강 연구원은 "글로벌 인적 네트워크는 자신이 훌륭한 자원임을 증명하고 보여줄 때만 의미가 있다"며 "문제 있는 행동을 일삼으면 사람들 속에서 오히려 문제아로 낙인만 찍힌다"고 지적했다.
강 연구원은 유학의 목적을 가능하면 '현지 정착'으로 삼으라고 조언한다. 그는 "외국 대학 타이틀만 간신히 얻어 돌아오면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다"며 "현지 기업에서 스카우트할 만한 인재가 되겠다는 목표가 있어야 유학 생활이 바로잡힌다"고 강조했다.
강 연구원은 부모의 강요로 억지 유학길에 오른 아이들이 우울증과 거식증 등 정서적 위험에 빠지는 모습도 숱하게 목격했다. 그때마다 아이는 일기와 편지, 문자메시지 등 다양한 방식으로 부모에게 구조 신호를 보내지만, 한국 부모들은 자녀가 사지에 내몰리기 직전까지도 이를 방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강 연구원은 "가정에서도 감당할 수 없는 아이를 유학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이런 예고된 비극이 발생한다"며 "부모는 유학을 보낸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아주 위험한 착각"이라고 말했다.
아이의 구조 신호를 무시한 대가는 생각보다 가혹하다고 한다. 강 연구원은 "제때 귀국해 적절한 치료나 관리를 받지 못한 아이는 결국 학교나 한인사회의 다른 이들에게도 피해를 주며 '공공의 적' 신세가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되면 아이는 부모 욕심이 만든 피해자인 동시에 현지에선 물의를 일으킨 가해자가 된다"며 "아이가 극단적 상황에 내몰리기 전에 빨리 문제를 인정하고 귀국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연구원은 한인 교포들과 긍정적 관계를 맺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2010년대부터 부유층 유학생들이 허위 스펙과 재력을 앞세워 위화감을 조성하는 경우가 급증하자, 한인사회가 유학생들의 바람막이가 되기는커녕 서로 괴리감만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강 연구원은 "현지 문화와 윤리를 존중하고 교포 사회와 활발히 소통해야 정서적으로 안정된다"고 조언했다.
이처럼 리스크가 적지 않은데도 자녀 유학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면, 적어도 이것만은 준비할 것을 강 연구원은 당부한다. 교육 관련 학위를 소지한 전문가에게 영어 읽기와 쓰기부터 배우라는 것이다. 강 연구원은 "미국에서 공부하려면 '압구정발 급조 스펙'이 아니라 깊이 있는 글쓰기 실력부터 갖춰야 한다"며 "현지에서도 한국식 사교육을 고집한다면 아이는 사회적·학업적으로 고립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