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낮 12시 서울 용산구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폭염에도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긴 대기줄이 늘어선 식당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한 음식점 앞에서 만난 30대 직장인 A씨는 "문 여는 시간인 오전 11시 30분에 맞춰왔는데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다"며 "날이 무척 덥지만 맛집이라고 해서 30분 넘게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불황에 코로나19까지 겹쳐 침체를 겪던 서울의 황금 상권이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강남의 압구정 로데오거리와 강북의 이태원역 주변이 대표적이다. 두 지역에서는 상권 회복 지표 중 하나로 꼽히는 공실률이 지난 1년 사이에 크게 줄면서, 과거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강남 최고의 상권으로 부상했다가 신사동 가로수길 등 주변 상권에 밀렸던 압구정 로데오거리도 최근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5일 찾은 압구정 로데오거리에서도 브런치 카페와 막걸리 주점 등을 중심으로 대기줄이 길게 늘어선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압구정 로데오거리에서 10년째 중고명품 가게를 운영 중인 B씨는 “2년 전만 해도 거리가 휑하고 빈 가게도 많았다”며 “특히 젊은 여성들이 많이 찾는 브런치 가게나 술집이 부쩍 늘어났다”고 말했다.
이태원과 압구정 로데오거리의 상권 회복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부동산감정원이 분기마다 집계하는 공실률 기준으로 이태원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지난해 1분기 22.26%였으나, 올해 1분기 4.44%로 뚝 떨어졌다. 같은 기간 압구정 로데오거리 공실률도 10.28%에서 5.58%로 하락했다.
자영업자들은 반색하는 분위기다. 이태원에서 6년째 고깃집을 운영하고 있다는 최재연(50)씨는 "평일에도 당일 예약이 계속 들어오고 있다. 예약만으로도 80~90%의 좌석이 찬다"며 "거의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원에서 만난 한 공인중개사는 "손님이 증가하다 보니 기존 '카페 거리' 외에 MZ세대들에게 핫한 카페들이 밀집한 새로운 카페 거리도 생겼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두 지역의 상권 회복을 아직 낙관하기 이르다는 얘기도 나온다. 황금 상권을 상징하는 '권리금'은 아직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태원과 압구정 로데오거리 주변은 과거 '억대 권리금'으로 유명했다. 이태원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정돈희(68)씨는 "코로나 때문에 권리금이 거의 사라졌고, 아직까지 권리금을 임대 조건으로 제시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면서 "코로나 전이라면 1억 정도였던 상가의 권리금은 현재는 0원"이라고 말했다. 임대료도 아직 과거 수준은 아니다. 압구정 로데오거리 인근에서 45년째 부동산을 운영하고 있다는 모상권(60세)씨는 "공실이 없다"면서도 "코로나 이전에 월세 800만 원 정도였던 상가가 이제는 350만 원 선에서 계약이 된다"고 말했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권리금과 임대료 회복세 등을 보면 아직까지 코로나19로 인한 상권 위축이 회복세를 보인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면서 "경기침체 상황을 고려하면, 두 지역의 상권이 다시 전성기 때로 회복될지 조금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