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러시아로부터 석유도 가스도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사할린-2 사업’ 참가도 없던 일이 될 것이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이 5일 인터넷에 올린 글이다. 폭염 속 전력난을 겪고 있는 일본에 에너지 공급을 끊을 수 있다고 위협한 것이다. 러시아는 일본 기업이 참여하는 극동 석유·가스 개발사업 '사할린-2'의 운영 회사를 러시아 기업으로 바꾸겠다고 지난주 통보했다. 일본이 미국·서방과 발맞춰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계속하는 데 대한 보복 조치가 본격화할 조짐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사할린-2 운영사인 ‘사할린에너지’의 모든 권리와 자산 등을 인수할 러시아 법인을 만든다는 내용의 법안에 이달 1일 서명했다. 즉각 발효된 법안에 따르면 일본 미쓰이물산 미쓰비시상사 등 사할린에너지 지분을 보유한 외국 기업은 러시아 정부 승인을 받아야 신설 법인의 지분을 받을 수 있다. 러시아가 승인을 거부하면 외국 기업은 지분을 환불받고 사업에서 배제된다. 메드베데프 부의장의 언급은 이 가능성을 암시한 것으로 보인다.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세계 1위인 일본은 전체 수입량의 10%를 사할린-2에서 공급받는다. 러시아산 LNG를 통해 생산되는 전력은 일본 전체 전력의 3%에 해당한다. 일본 에너지 산업에 비상이 걸린 것이지만, 이달 10일 참의원 선거를 앞둔 일본 정부는 애써 의연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들이 푸틴의 전쟁 자금줄 차단을 위해 검토 중인 러시아산 석유 거래가격의 상한 설정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지난 3일 “지금의 절반 정도 가격을 상한으로 하고, 그 이상으로는 국제사회에서 사지 않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분노한 러시아가 메드베데프 부의장의 입을 빌려 사할린-2 배제 가능성을 흘린 것이다. 하기우다 고이치 경제산업장관은 5일 “외교 경로를 통해 (러시아 측에) 사할린-2 사안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다”고 밝혔지만, 러시아를 설득할 수단은 사실상 없다.
일본 언론들은 '사할린-1 사업' 참여까지 위협받을 가능성을 걱정했다. 6일 요미우리신문은 러시아가 자원 개발권을 보유한 외국 법인이 일정 기한 내 권한을 러시아 법인에 양도해야 한다는 내용의 입법을 지난달 관철시켰다면서 사할린-1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 도쿄에선 관측 사상 처음으로 9일 연속 35도 이상의 폭염이 계속됐다. 일찌감치 전력 수급 주의보가 발령된 일본에선 전력 공급량의 3%만 줄어도 대규모 정전인 ‘블랙아웃’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대부분 일본 국민이 현재로선 기시다 내각의 러시아 경제 제재에 찬성하고 있지만, 러시아가 에너지 보복에 실제 나서면 민심이 흔들릴 공산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