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나가줬더니, 이렇게 뒤통수를 치네요.”
문재인 정부에서 치안정감으로 승진했다가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옷’을 벗은 A씨의 목소리에선 분노가 묻어났다. 치안정감은 경찰 수장 경찰청장(치안총감) 바로 아래 계급이다.
5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기자회견 발언이 발단이 됐다. 이 장관은 윤희근 경찰청 차장을 차기 청장으로 내정한 직후 “지난 정권에서 임명됐던 치안정감들은 정치권력과 상당히 연관돼 있다는 세평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새 정부는 앞서 5월 치안정감 인사 당시 임기가 정해진 국가수사본부장을 제외한 차기 경찰청장 후보군(치안정감) 전원을 물갈이했다. 문재인 정부에 복종해 중립성이 생명인 경찰 고위 간부들을 대거 내쫓았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A씨는 “너무 모욕적이라 말도 안 나온다”면서 “아무 근거도 없이 국가와 국민에 평생을 바친 경찰관의 명예를 깡그리 실추시켰다”고 날을 세웠다. 그는 ‘부관참시’라는 격한 표현까지 썼다. 전임 정부에서 치안정감으로 승진한 B씨도 “정치권과 유착돼 있다고 말하려면 이 장관은 근거부터 대라”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이 장관은 경찰 통제조직(경찰국) 신설에 반발하는 현장 경찰관들의 단체행동도 “정치적 행위”로 못 박았다. 전국경찰직장인협의회의 삭발 농성을 “순수하지 않다” “야당 주장에 편승했다” 등 정치권의 사주를 받은 집단항명으로 왜곡했다.
그의 강성 발언은 안 그래도 격앙된 현장 분위기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었다. 서울 일선서 경정급 간부 C씨는 “지휘부와 현장 경찰관들을 갈라치기하는 이 장관의 행태가 훨씬 정치적”이라고 쏘아붙였다. 간부 D씨도 “단체행동을 하는 분들이 얻을 게 없는데, 조직을 생각하는 마음을 정치질로 매도하는 게 장관이라는 사람이 할 소리냐. 차라리 새 정부에 충성 서약을 하라고 대놓고 명령하는 편이 낫겠다”고 꼬집었다.
경찰을 길들이겠다는 행안부의 노골적 의도가 확인된 만큼, 윤 후보자에 대해서도 “기대할 게 없다”는 우려가 더 크다. 7개월 만에 경무관에서 경찰 수장을 꿰찬 그가 감히 자신을 영전시켜 준 정부에 할 말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자조다. 경찰 관계자는 “김창룡 전 청장은 자진 사퇴로 꿈틀대기라도 했지, 윤 후보자는 시늉조차 안 할 것 같다”면서 “행안부 입장을 그대로 전달하는 앵무새만 되지 않아도 다행”이라고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