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5시간씩 4일 연속 찍어" 한국 드라마는 법 지키면서 못 찍나

입력
2022.07.0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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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권력과 한류 양극화] 
④ 노동법 사각 지대에 놓인 스태프
스태프 "근로 조건 개선 요구했더니 계약 해지" 
방송스태프, 근로자냐 프리랜서냐 반복되는 공방

카메라는 쉼 없이 돌고 또 돌았다. 오전 8시 촬영 시작, 밤 12시 촬영 종료. 지방 촬영이라도 있는 날에는 오전 6시 30분에 집합했다. 많이 자면 5시간 눈을 붙이고 나왔다. 점심 시간은 오후 2시 30분, 저녁 시간은 3시간 뒤인 오후 5시 30분. 밥 때조차 제멋대로였지만 이유는 알 수 없었다.

KBS 드라마 '미남당' 촬영 현장의 녹음 파트로 일했던 스태프 A(32)씨가 74일(2021년 12월~2022년 5월 중) 동안 몸담은 제작 현장의 현실이다. 강행군이 계속되자, 참다 못한 그와 동료들은 "주 52시간을 보장해달라"며 제작사 측에 근로 조건 개선을 요구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계약 해지'. 스태프 10여 명은 지난 5월 정해진 촬영 일정을 절반쯤 넘긴 시점에서 사실상의 해고 통보를 받았다.

A씨는 "하루에 촬영 시간만 13시간이었고, 준비 시간과 식사 시간까지 하면 17시간씩 일했다"며 "제작사에 법을 지켜달라고 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KBS 드라마 '미남당'의 제작 현장에 대해 근로감독에 착수했다.

드라마 제작 현장의 열악함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노동법보다 뿌리 깊은 노동 관행을 우선하고 있는 탓이다. 촉박한 제작 일정이나 스타의 스케줄에 맞추기 위해서 스태프들의 권리는 무시되기 일쑤다. 특히 촬영 현장이라는 특성상, 시시비비를 다투는 도중에 촬영이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도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김기영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 방송스태프 지부장은 "방송사가 제작비 단가를 후려치기 때문에 결국 스태프들을 쥐어짜는 구조"라며 "대부분의 드라마 제작 현장은 하루 15시간씩 주 4일, 주 60시간 일하며 실정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드라마 스태프들이 월급이 아닌 일당으로 임금을 받는 관행도 이런 혹사를 부추긴다. 일당제하에선 짧은 시간 안에 많이 찍을수록 인건비를 줄일 수 있다. 김 지부장은 "미남당은 18회 드라마를 120회차(120일)로 찍었는데, 18회 드라마의 경우 보통 150회차로는 찍어야 작품 퀄리티와 스태프들의 적절한 휴식권을 보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드라마 스태프의 근로 조건 문제는 스태프가 근로자인가, 프리랜서(개인사업자)인가에 대한 논쟁과 뗄 수 없다. 최근 들어 정부나 법원은 대다수 스태프들이 제작사의 지휘·감독을 받는 근로자로 판단하는 추세다. 고용부는 2019년, 근로감독을 통해 3개 드라마 제작 현장 스태프 177명 중 157명에 대해 처음으로 근로자의 법적 지위를 인정했다. 지난해 6월에는 법원이 드라마 '마성의 기쁨' 촬영감독이 근로자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반면 제작사나 방송사는 스태프를 여전히 프리랜서라고 여긴다. 그러다 보니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경우도 태반이다. 개인사업자로 보고 '업무위탁계약서'를 쓰는 사례도 빈번하다. 미남당의 스태프들도 제작사와 업무위탁계약서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근로자성은 형식이 아니라 실질을 따지기 때문에 법적으로 업무위탁계약서를 작성했다고 하더라도 근로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는 "노동법을 위반하는 행태가 만연한 게 드라마 현장"이라며 "고용부에서 드라마 스태프들의 근로 형태와 관련해 지침을 마련해 주는 것도 근로 조건을 개선하는 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윤 변호사는 "스태프들의 임금 체계도 일당제 대신 월급제로 전환하거나 일당제를 유지하더라도 기본급, 수당 등 임금 세부 기준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송옥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