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철이 다가오면 '고공행진'하던 레저용 차량(RV) 중고차 가격이 이례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리터(L)당 2,000원을 훌쩍 넘은 기름값이 소비자 부담을 키우면서 구매 수요가 크게 줄어든 탓이다. 반도체 수급난 등으로 신차 구매가 어려워지면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던 중고차 가격이 '고유가'에 무릎을 꿇은 셈이다.
4일 케이카, 첫차 등 중고차 업계에 따르면, 올 4월까지 상승세를 기록했던 중고차 시세가 5월에 이어 6월에도 하락세를 기록했다. 특히 지난달에는 판매 중인 중고차의 절반 이상(국산 56%·수입 53%)의 가격이 전월 대비 떨어졌다.
지난달 중고차 가격 하락은 인기 차종도 피하지 못했다. 특히 여름만 되면 가격이 오르던 스포츠유틸리티차(SUV), 미니밴 등 RV 시세 하락을 두고 업계에서도 보기 드문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신차를 사기 위해 1년 이상 대기해야 하는 기아 '카니발'도 지난달 평균 판매 가격이 전월 대비 5.2% 하락했다. 올해 초까지 '웃돈'을 주고 사야 했던 신차급 중고차인 2022년식 모델도 전월보다 0.2% 저렴하게 거래됐다. 신차 구매를 위해 최대 16개월가량 대기해야 하는 기아 '더뉴 쏘렌토' 중고차 가격도 전월 대비 0.4% 빠졌다. 현대차 '팰리세이드'의 지난달 평균 중고차 가격도 5월보다 2.1% 낮았다.
중고 세단도 가격이 떨어졌다. 올 상반기 중고차 판매 1위를 기록했던 현대차 '그랜저IG'는 5월 -1.0%, 6월 -2.6% 등 가격 하락 폭이 점차 커졌다. 작지만 실내 공간이 넓어 자영업자, 여성 운전자에게 인기가 높은 기아 '더뉴 레이'도 5월(-5.2%), 6월(-3.2%) 두 달 연속 가격이 하락했다. 5월까지 중고차 가격이 올랐던 제네시스 'G80'도 지난달엔 전월 대비 1.6% 하락 판매됐다. 수입차 판매 1위인 메르세데스-벤츠의 'E클래스'도 5월 중고차 판매 가격이 전월 대비 2.1% 하락한 데 이어, 지난달에도 3.4% 빠졌다.
전문가들은 중고차 시세 하락이 최근 몇 달 동안 빠르게 오른 기름값 때문으로 분석했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6월 마지막 주 전국 주유소의 휘발유 L당 평균 판매 가격은 전주보다 21.9원 오른 2,137.7원으로, 8주 연속 상승했다. 높은 금리도 중고차 가격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주요 카드·캐피탈 중고차 할부금융 최저 금리는 3%대 후반이지만, 실제 적용 금리의 경우 대부분 10%대 중반인 것으로 나타났다.
박상일 케이카 PM 1팀장은 "중고차 시장은 원래 유지 비중이 전반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지만 최근에는 고금리, 고유가 등 경제 전반의 불확실성 영향으로 내림세로 접어들었다"며 "유류비 부담을 느낀 소비자들이 하반기에도 신차 구매를 계속해서 미루면서 당분간 하락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