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저는 맥시멀리스트(최대주의자)예요. 회사에서는 '일을 잘한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 자발적 야근도 많이 하고요. 휴가 때도 분 단위로 시간표를 짜서 최대한 많은 곳을 구경하고 여러 경험을 해보려고 해요. 주말에 어쩌다 집에 혼자 있으면 대청소라도 하려고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경쟁 의식이 강했어요. 학구열이 강한 동네, 전문직 부모님 밑에서 자라 이웃 친구들과 비교당하기 일쑤였죠. 나름대로 모든 걸 다 이룬 듯한 지금, 더 큰 목표를 잡아야만 할 것 같아요. 왠지 그냥 있기에는 불안해요. 주변에서는 좀 멈추고 쉬기도 하라는데, 도무지 가만히 있지를 못하겠어요. 정수지(가명·34·직장인)
A. 이번 주 추천 콘텐츠
영화- '걷기왕'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말이 ‘그만하면 잘했어'야.”
2015년 개봉한 영화 '위플래쉬'를 기억하시나요. 무한 상승을 꿈꾸는 음악대학 재즈 교수 플레처(J.K. 시몬스 분)의 명대사입니다. 영화에서 밴드가 연주하는 재즈 곡 제목인 ‘위플래쉬’('채찍질'이라는 의미)처럼 플레처 교수는 학생들을 최고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몰아세웁니다. 극 중 나오는 음악은 최대한 비트를 잘게 쪼개 엄청난 긴장감을 부여하죠.
약 1년 후 국내에선 저예산 영화 '걷기왕'이 개봉하는데요. 이 영화는 '위플래쉬'와 정반대의 분위기를 보여줍니다. 풍경도 음악도 슴슴한 이 영화를 수지씨에게 추천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더 큰 꿈을 품어라', '패기와 간절함과 열정을 가져라'라는 식의 메시지를 주입받아 왔습니다. 조금만 쉬려고 하면 '정신력이 없다', '나약하다'라는 소리를 듣기 일쑤입니다.
영화 '걷기왕'은 무조건 '빨리'와 '열심히'를 강요하는 세상에 대한 반란을 보여줍니다. 주인공 만복(심은경 분)은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는 선천적 멀미증후군 여고생인데요. 그는 어떤 계기에 의해 '걷기'라는 평범한 재능으로 경쟁의 세계에 뛰어들게 됩니다.
이제야 자신의 재능을 찾고 진정한 자아를 찾게 되는 성공스토리인가 싶었는데, 영화는 엉뚱하게 흘러갑니다. 목숨 걸고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뻔한 서사를 이 영화는 거부하죠.
승리는 못하더라도 완주를 하는 데 가치가 있다는 스포츠 정신의 감동 또한 없습니다. '꼭 승리하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하라'라는 메시지는 어느새 모양만 바꾼 성공 이데올로기를 보여줍니다.
남들과는 다르게, 오히려 느리게 가는 만복의 일상을 보다 보면 '각자의 삶은 다른 것인데 우리는 무엇을 향해 이렇게 뛰어가는 건가'라는 의문이 듭니다. 심지어 자기를 '방기'해 버리는 만복을 보면서 누군가는 한심해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그는 성장합니다.
그저 자신만의 레이스를 이어가고 있는 만복의 모습을 보세요. 물론 뛰어만 왔기에 멈추는 것도 조금은 연습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뭐 어때요. 그 과정에서 정말 수지씨만의 길을 찾아갈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