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연극 선구자 피터 브룩 별세

입력
2022.07.03 20:55
24면
2일 숨져
9시간 공연 '마하바라타' 대표작
셰익스피어 작품 파격 연출로 유명

영국 출신 20세기 세계 연극의 선구자로 불리는 피터 브룩 감독이 2일(현지시간) 프랑스에서 별세했다. 향년 97세.

1925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브룩은 셰익스피어 작품을 파격적으로 연출했다. 1962년 '리어왕'에선 리어를 가련한 백발의 가부장적인 노인으로 해석에 무대에 올렸다. 1971년 '한여름 밤의 꿈'에선 전통적인 숲 대신 하얀 박스형 무대에 철사로 숲을 만들어 연인의 엇갈린 사랑을 감각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20대 때 영국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의 전신인 셰익스피어 극단 연출가를 비롯해 영국 로열 오페라 하우스의 예술감독을 지냈다. 브룩은 빈 무대에 카펫만 펼치고 공연을 꾸린 혁신적 연출가였다. 급진적이었던 만큼 구설에도 자주 올랐다. 브룩은 로열 오페라단 예술감독 시절 '보리스 고두노프' '살로메' 등을 연출했는데, 번번이 오페라의 전통과 작곡가의 의도를 무시한다는 비판을 들었다.

브룩의 대표작은 1985년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초연한 9시간짜리 대작 '마하바라타'다. 세계 최고의 전쟁 서사시로 꼽히는 인도의 동명 대서사시를 원작으로 16개국 25명의 배우로 공연을 꾸렸다.

리마 압둘 말락 프랑스 문화부 장관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에 "브룩은 극장에서 가장 아름다운 침묵을 선사한 연출가로 우리에게 많은 것을 물려줬다"며 "하지만 그의 마지막 침묵은 한없이 슬프고, 그는 영원히 파리 북동부 극장의 영혼으로 남을 것"이라고 추모글을 올렸다.

브룩의 연극 '11 그리고 12'은 2010년 국내 초연됐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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