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당한 피고를 둔 승자의 재판

입력
2022.07.08 04:30
26면
7.8 사담 후세인과 두자일 학살


2006년 이라크 특별재판소가 전 독재자 사담 후세인에게 사형을 선고한 범죄는, 당시 국제사회에 거의 알려진 바 없던 ‘두자일(Dujail) 양민학살’이었다.

1982년 7월 8일, 수도 바그다드에서 북쪽으로 약 53Km 떨어진 두자일에서 후세인이 징병 독려 연설을 마치고 막 떠나려던 순간, 도로 양편에 잠복해 있던 괴한 10여 명이 후세인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 괴한 거의 전원과 경호원 2명이 즉사했다.
두자일은 1980년 강제 해산된 시아파 극단주의 정당 다와(Dawa)당 지지 지역이었다. 후세인은 사건 배후를 색출한다는 명분으로 시아파 주민 약 500여 명을 연행해 148명을 처형했고, 수백 명을 추방했다. 집과 농장을 몰수하고, 도로변 야자나무 숲도 불도저로 밀었다. 당시는 시아파 맹주인 이란과의 전쟁(1980~88) 초기였다.

후세인의 반인륜범죄 기소 혐의 중에는 두자일 학살보다 더 끔찍하고 엄중한 것들이 물론 많았다. 이란 전쟁 화학무기 사용, 1990년 쿠웨이트 침공, 남부 시아파와 북부 쿠르드족 화학무기 집단 학살 등등.

그는 사형 확정 나흘 만에 처형됐고, 나머지 재판은 궐석으로 진행됐다. 이란 전쟁기간 미국이 무기와 자금을 전폭적으로 지원했고 화학무기 사용도 미국의 지시 혹은 승인하에 이뤄졌다는 사실, 쿠르드족 학살에 쓰인 화학무기가 이라크의 겨자가스가 아니라 이란 측의 청산칼리 혈액제제였다는 사실 등, 반박할 기회도 미국의 죄상을 폭로할 기회도 얻지 못했다.

미국의 2003년 이라크 침공이 이듬해 대선을 겨냥한 부시의 명분 없는 전쟁이었다는 설이 있다. 부시 정부가 침공 이유로 내세운 ‘대량살상무기(생화학무기)’도 실체가 없었고, 백악관이 그 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애당초 유엔 안보리의 이라크에 대한 사찰과 무장해제 결의(1441호)를 근거로 한 무력 침공 자체가 미국의 국제법 위반이었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