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은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오랫동안 아파왔다. 이를테면 피부 발진, 간지러움, 손발 저림, 부종, 꼬리뼈 통증… 임신이라도 할라치면 감수해야 하는 흔한 복수의 증상들. 그러나 현대의학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모든 게 임신 탓일 뿐, 치료법이 있을 리 없다.
현대미술가 차재민(36)씨는 "의학이 방관"하는 사이 진단명이 없는 통증을 느끼는 여성들에 주목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 세상에 내놓은 24분짜리 영상 '네임리스 신드롬'으로 리움미술관이 유망한 젊은 작가에게 주는 올해의 '아트스펙트럼 작가상'을 받았다.
최근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만난 차씨는 "동시대 여성을 이해하고 해석하기에는 백인 남성 중심의 의학은 비좁다"며 "무명의 병의 요인은 다양하겠지만 주로 여성들이 그런 상황에 처하는 건 상당히 명확한 근거가 있어 보였다"고 했다.
'네임리스 신드롬'은 여성에게 질병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실제 그의 어머니가 진단받기 어려운 희소병을 앓다 세상을 떠났다. 그는 답을 내리기 위해 수많은 병원을 전전하고, 논문도 수십 편 읽었다. "살면서 예상치 못한 소수성을 경험"하게 된 계기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등장과 동시에 이름을 얻었지만 어떤 것들은 그렇지 못했다. "이름이 생긴다는 건 권력이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들은 이 사회에서 답을 얻을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잖아요. 진단받지 못한 증상의 답을 내보려 노력하고, 그 와중에 무언가를 다시 보고, 다시 생각하는 그런 집착의 태도를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여성 15명을 인터뷰하고, 반년은 책만 팠다. 수전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 앤 보이어 '언다잉', 카를로 긴츠부르그 '징후들: 실마리 찾기의 뿌리' 등을 탐독했다. "리서치를 하면서 주워 온 나뭇가지로 만든 탑 같은 것"이 이번 작품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을 졸업한 그는 사회성 짙은 영상 작업을 주로 해 왔다. 가든파이브·송도 신도시의 재개발을 둘러싼 갈등이나 케이블 설치 노동자, 의문사 희생자의 유족 등을 통해 개인의 삶 안에 사회가 어떻게 스며 있는지를 연구했다. "모든 예술은 다 정치적이고, 사회적일 수밖에 없죠. 제 작품 역시 제가 속한 사회, 제가 보는 현실에 맞닿아 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