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은 현재의 기성세대가 빚어낸 한국 사회의 가장 안타까운 모습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기성세대가 외면하지 말고 직시해야 한다. 본인 세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해서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저출산에 대한 우려의 배후에 있는 기성세대 중심의 사고를 극복해야 한다.
저출산에 대한 기성세대의 사고는 유치하다. 쉽게 말해 고령화에 따른 제반 문제해결을 위해 늘어나는 고령인구만큼 '저령인구'를 많이 만들어 달라는 주문에 불과하다. 그러나 찬찬히 생각해보라. 현재 노령인구를 부양해야 할 청장년에게 아이들까지 되도록 많이 낳아 달라는 건 정말 잔인한 주문이 아니겠는가? 고령을 맞는 기성세대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렵더라도 우리 세대가 갖는 문제에 대해 아래 세대에게 손 안 벌리고 우리 세대 내에서 해결할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다짐이어야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도 청년층이 노년층 뒷바라지해 주는 방식은 사회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이미 가능하지 않은 상황이다.
저출산으로 미래에 대한민국이 없어질 거라는 기우에 앞서, 저출산을 바로 현재의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로 받아들여야 한다. 무엇이 젊은 세대가 앞으로 삶의 질이 떨어지리라는 우울한 전망을 하게 하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젊은이들은 저출산이라는 방식으로 기성세대에게 우리 사회 여러 문제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에 책임이 있는 세대는 그 세대에서 저지른 실수와 실패로 인해 아래 세대에게 얹어진 짐을 발견하고 또 덜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힘에 부칠 때는 우리의 실수이지만 우리만의 힘으로 바로잡기 어려우니 그대들과 연대하여 해결해 나가겠다고 솔직히 인정하고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요약하자면, 기성세대가 미래세대를 진정한 동료와 동반자로 생각하지 않는 이상 저출산 문제의 해결은 요원할 것이다. 고령 기성세대를 위한 저출산 대책이 되지 않도록 젊은 세대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
만약 고령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의 미래를 더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데미니 투표(Demeny voting)' 혹은 아동 투표권 제도의 도입도 적극적으로 검토해볼 만하다. 이 제도는 미성년자에게까지 선거권을 확대하고 미성년자의 경우 부모나 보호자가 선거권을 대신 행사하자는 취지로 제안된 바 있다. 아직 세계 어떤 나라에서도 실행된 바는 없지만, 세계에서 저출산 문제가 가장 심각한 한국에서 제일 먼저 시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기성세대가 미래세대를 동료와 동반자로 생각한다면 나이와 상관없이 전 연령에 투표권을 부여하는 데 인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경우 아동 투표권 도입은 미성년자를 자녀로 둔 30대와 40대의 선거권을 대폭 늘려주고 아이가 많은 부모일수록 더 많은 투표권을 행사할 기회가 되기도 할 것이다. 비록 아이들이 직접 투표장에 들어가지는 못하더라도 부모들은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아이들의 장래를 생각하면서 투표하게 되지 않을까? 대리 투표하는 부모가 아이들과 누구에게 투표할까를 놓고 서로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도 즐겁지 않은가?
마침 과거와 같이 보수 정당이 젊은 세대에게 일방적으로 외면받던 상황도 변해가고 있어 정치적 합의에 이르기가 과거보다는 더 수월할 수도 있다. 국가의 소멸 가능성만큼 아주 먼 미래의 일을 걱정하는 사람들이라면, 현세대보다 조금 더 먼 미래까지 살아갈 바로 다음 세대와 그다음 세대의 목소리를 듣는 데 주저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