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켠다. 채널을 돌린다. 뉴스가 나온다. 잠시 머물러 어떤 소식들이 나오나 본다. '당권을 둘러싸고 민주당 내 친문과 친명 간에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라는 뉴스가 나온다. 채널을 돌린다. 신문을 펼친다. 정치면 곳곳에 계속 '친문 대 친명'이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이 단어들을 피하고 싶어 이리저리 도망을 가보지만 피할 길이 없다. 어쩌다 이 두 단어가 지금 민주당을 설명하는 주요 키워드가 된 것일까. 궁금하다.
민주당 내 친문 대 친명으로 시작하는 기사를 볼 때마다 늘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친문의 '문'과 친명의 '명'은 각각 무엇을 기준으로 나뉘는 것일까? 누가 더 문재인 전 대통령과 가까운지, 누가 더 이재명 의원과 가까운지가 기준인가. 정당 안에서 리더를 중심으로 정파·계파가 나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 기준이 '사람'이기만 한 것은 매우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아니 부자연스러운 일이어야 한다. 왜 이 부자연스러운 일에 대해서 아무도 질문하지 않는가? 다들 궁금하지 않은가.
친문 하면 딱 떠오르는 우리 시대 과제는 무엇인가? 친문들이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반드시 풀고자 하는 사회 문제는 무엇인가? 들은 바가 있나? 떠오르는 것이 있나? 친명 하면 딱 떠오르는 사회적 가치는 무엇인가? 친명들이 어떤 시련 속에서도 반드시 관철시키고자 하는 문제는 무엇인가? 생각나는 것이 있나? 전해 들은 바가 있나?
친문과 친명이 각각 무엇을 지키기 위해서 저리 갈등하는지 시민들은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저 '자리' 싸움으로밖엔 보이지 않는다. 물론 당권을 잡으면, 다음 총선에서 공천권을 획득할 수 있고, 공천권을 획득한 이가 다음 대선에서 당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쯤은 시민들도 알고 있다. 문제는 이것을 넘어선 싸움의 이유가 필요하다는 거다. 그것을 알고 싶다는 거다.
어떻게 해야 이 궁금증을 풀 수 있을까? 알려주지 않으니 직접 묻는 수밖에 없다. 친문에서 '문'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고자 하는지, 친명에서 '명'이 우리 사회 무엇을 대변하고자 하는지 계속 물어야 한다.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라도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 이 지난한 싸움을 하고 있는지 고민하게 해야 한다. 계속된 물음에 답하다, 그 답들이 진짜 자기가 이루고픈 가치라고 생각하게 해야 한다. 그렇게라도 해서 민주당이 그저 '당권'이 아닌 자신들이 풀어야 할 사회적 과제를 놓고 당내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게 해야 한다.
시민들은 준비되어 있다. 자신들이 지향하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싸움이라면, 그것이 어떤 전투든 기꺼이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다. 선거에서 표를 행사하는 것으로든, 정치후원금으로서든, SNS에 응원 글을 올리는 것으로서든, 정당에 가입해 당내 경선에 한 표를 행사하는 것으로든, 어떤 형태로서든 그 싸움에 함께할 의지가 있다. 단, 그 싸움이 나의 싸움, 우리의 싸움, 우리 공동체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위한 싸움이 될 때 그렇다.
지금 민주당 내 친문과 친명 간의 싸움에는 그 무엇이 없다. 그래서 공허하다. 이 공허한 싸움을 의미 있는 싸움으로 바꿀 질문이 필요하다. "친문의 '문'과 친명의 '명'은 각각 어떤 사회적 가치를 담고 있나요?"라는 질문을 함께해줄, 답해줄 이가 있다면 무척 반가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