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로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가 지도하는 인공지능(AI) 연구팀이 국제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논문이 표절로 확인돼 파문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인기 과제에 매몰된 국내 학계의 ‘연구 편향‘ 관행과 일단 논문만 많이 찍어내고 보자는 ‘공장식 연구실‘이 빚은 예견된 망신이라는 비판이 많다.
서울대는 27일 총장 직권으로 윤 교수 연구팀 논문에 관한 연구진실성조사위원회(연진위)를 열었다. 표절 의혹이 불거진 지 하루 만에 검증위원회가 가동된 건 대학 측이 이번 사태를 그만큼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얘기다.
앞서 윤 교수팀은 19~24일 열린 ‘국제 컴퓨터 비전과 패턴 인식 학술대회(CVPR) 2022’에 영상 속에서 움직이는 물체나 빛에 관한 정보를 기존 기술보다 빠르게 인식하는 방법을 다룬 논문을 제출했다. 해당 논문은 AI 분야의 세계 최고 학회로 꼽히는 CVPR에서 우수 논문으로 선정되며 격찬을 받았지만, 상당 부분 내용이 표절로 드러났다.
학계에선 ‘결국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논문의 ‘질’보다 ‘양’에 치중하면서, 정작 윤리 검증은 소홀히 하는 국내 연구문화의 폐해가 다시 한 번 확인됐기 때문이다.
올해 CVPR에는 2,065편의 연구논문이 채택됐다. 불과 5년 전인 2017년(783편)보다 세 배 가까이 폭증했다. 그만큼 AI 분야의 글로벌 연구가 활발하다는 의미로, 국내 연구자들이 주목받기 쉬운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문제는 논문 게재 횟수에 집착하는 관행이다. 특히 유명 학회 논문 실적이 정부 지원금의 바로미터가 되는 국내 연구 생태계가 이런 잘못된 풍토를 부채질했다. 김진형 전 인공지능연구원장은 “연구자가 많을수록 논문이 빨리 나오는 건 당연지사”라며 “폭넓은 연구에 힘쓰기보다 참여 연구진을 늘리는 데 치중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고 꼬집었다.
당연히 검증은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논문 투고자와 별개로 논문을 심사하는 학자로 구성된 리뷰어의 숫자에 비해 생산되는 논문 수가 월등하게 많은 탓이다. 최재영 성균관대 인공지능대학원 교수는 “논문이 하도 많이 쏟아지니 리뷰어들이 다 소화하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라고 말했다. 남범석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도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려 “CVPR를 비롯한 AI 관련 학회엔 한 해 2,000편 넘는 논문을 뽑아낸다”면서 “리뷰어가 있다 해도 수백 명인데, '퀄리티 컨트롤(품질 관리)'이 될 리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대는 앞으로 논문 관련 모든 조사와 심의, 의결 등을 비공개로 진행한다. 최종 결과는 2개월 내에 나올 예정이다. 대학 규정에 따르면 본조사위원회는 구성일로부터 60일 안에 결과보고서를 작성해 연진위에 제출하도록 돼 있다.
교신저자인 윤 교수와 공저자들은 표절을 시인하면서도 해당 표절은 제1저자 단독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해명이 사실이라 해도 공저자들이 표절 책임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라 향후 징계 수위에 관심이 모아진다.
문제의 논문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연구재단과 정보통신기획평가원 지원을 받아 작성됐다는 점도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예산이 들어간 만큼 과기부도 해당 사안을 들여다보기로 했는데, 공저자 중 한 명이 이종호 과기부 장관의 아들로 밝혀져 공정한 검증이 가능하겠느냐는 의구심이 벌써부터 나온다.
이 장관은 통화에서 “모든 건 절차대로 진행될 것”이라며 조사 과정에 일절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