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근데 왜 다들 이렇게 죽는 거야?" 얼마 전 1990년대 노래를 듣다가 문득 던진 질문이다. 헤어진 연인은 대개 하늘에 있고, 천 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순애보를 노래하는 곡도 한둘이 아니다. 새천년을 앞두고 모든 게 심각한 이런 '세기말 감성'에는 대형 사건 사고가 터지고 각종 종말론이 퍼지던 당시 사회 분위기가 반영됐다.
새로운 세기가 시작된 지 20여 년이 흘렀다. 인류는 별다르지 않게 살고 있고 '세기말의 종말론'도 거짓이 됐다. 그럼에도 전례 없는 감염병 사태 때 목도했듯이 종말론은 건재하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인간이 날 때부터 안고 있는 것일까. 백조 2022 여름호에 실린 김연수의 단편소설 '이토록 평범한 미래'는 미래에 대한 덧없는 불안을 곱씹어 보게 하는 작품이다.
소설가인 1인칭 화자 '나'에게 종말론이 난무하던 1999년은 같은 과 동기 '지민'과 함께 '지민'의 어머니(지영현)가 생전에 쓴 장편소설 '재와 먼지'를 찾아다니던 해였다. 20년도 전에 출간됐지만 판매금지당한 책이라 구하기 어려웠던 터다. '나'는 출판사에 근무하는 외삼촌으로부터 '1972년 10월을 우리는 시간의 끝이라 불렀다'라는 그 소설의 첫 문장이 당시 검열관의 비위를 건드렸을 것이란 추측을 전해 듣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노렸던 '10월 유신'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물론 '재와 먼지'는 정치소설이 아니다. 미래가 없는 두 연인이 1972년 10월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한 순간 인생이 거꾸로 흘러가는 일종의 시간 여행을 경험한다. 자고 나면 그 전날이 되는 식이다. 시간 여행이자 두 번째 삶을 통해 가장 좋은 순간(서로를 처음 만난 순간)이 가장 나중에 온다고 상상하는 일이 현재를 어떻게 바꿔놓는지 알게 된 이 연인은 삶의 의지를 갖게 된다. 첫 만남의 순간, 시간은 다시 정방향으로 흐르고 이들은 세 번째 삶을 살아간다. "이미 일어난 일들을 원인으로 현재의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원인이 되어 현재의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하는 두 번째 삶의 방식대로.
시간 여행은 '재와 먼지' 속 인물들의 삶만 바꾼 게 아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고, 엄마를 죽음으로 내몬 아빠를 용서할 수 없었던 '지민'에게, 또 그런 지민을 바라보던 '나'에게도 전환점이 된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두 번의 시간여행을 통해 시간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요. 시간이 없으니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어요. 오직 이 순간의 현재만 존재하죠. 그럼에도 인간은 지나온 시간에만 의미를 두고 현재의 원인을 찾습니다."
외삼촌의 이런 해설 역시 소설 속 인물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눈뜨면 출근하고, 퇴근할 때 저녁 메뉴를 고민하고, 주말이면 밀린 집안일을 하는 '이토록 평범한 일상'을 이미 도래한 미래이자 오늘을 사는 이유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불안으로 삶의 의지가 꺾이는 일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말로는 골백번도 더 깨달았는데, 우리 인생은 왜 이다지도 괴로운가?"라는 소설 속 문장이 가슴을 더 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