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정치를 대신할 수 없다

입력
2022.06.28 00:00
27면

얼마 전부터 '○○은 과학이다'라는 표현이 유행이다. 한 침대 회사가 침대의 기능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내세운 광고카피에서 유래한 문구인데, 과학적 기준으로 정확한 결론에 이를 수 있는 경우를 지칭하는 유행어가 되었다. 그런데 막상 침대를 사러 가보면, 과학이라는 기준만으로는 침대를 선택할 수 없다. 최고의 기술과 소재를 총동원해서 만든 수천만 원짜리 최상위 제품부터 최소한의 기능만 갖춘 보급형까지 다양한 특성과 가격대의 상품들이 전시장을 메우고 있다. 물론 각 상품의 특성을 과학적으로 정확히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집 안 구조와 가족들의 선호도 고려해야 하고 당연히 예산도 고려해야 한다. 무조건 최첨단 기술을 적용한 최고급 사양의 침대를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최근에는 정치권에서도 과학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주로 과학기술이 중요한 정책에 대해서 상대방이 정치적 목적으로 과학을 무시하거나 왜곡하고 있다는 비난에 사용된다. 코로나 방역이 대표적인 예이다. 경제를 생각해서 방역을 조금이라도 완화하려고 하면 과학적 근거 없이 정치적 목적으로 코로나를 확산시킨다는 비난이 일었고, 반대로 검증되지 않은 백신접종을 강요하고 영업을 과도하게 제한하여 인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정책 담당자들을 고소하는 사람들도 있다. 문제는 코로나처럼 새로운 현상에 대해서 과학이 당장 명확한 해석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코로나의 특성이나 각종 대안들의 효과에 대해서 급하게 진행된 과학적 연구들의 결론은 불확실성이 높을 수밖에 없고, 정책 당국은 그런 불확실성하에서 사회경제적 영향까지 고려하면서 의사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로라하는 과학기술을 보유한 국가들이 제각기 다른 코로나 정책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국가는 제로 코로나를 위해서 그 어떤 사회적 희생도 감수하는가 하면, 어떤 국가는 조속한 집단면역 달성을 위해 느슨한 방역을 채택하기도 한다. 우리나라가 자랑하던 확진자 동선추적 방식은 대부분의 서구 국가들에서는 사생활 침해 문제로 채택되지 않았고, 우리나라도 오미크론으로 확진자가 폭증하자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코로나 대응은 과학적 정보와 사회경제적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정치적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과학이 논란이 되는 또 하나의 분야는 에너지와 기후환경 분야이다. 화석 연료의 온실가스 효과 자체가 과학적으로 제기되었고, 그에 대한 대안들도 과학기술을 통해 개발되고 있다. 역시 문제는 과학이 모든 이슈에 대해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원전의 역할에 대해서 첨예하게 의견이 대립하면서 서로 자신의 주장은 과학이고 상대방의 주장은 정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과학은 핵심 이슈인 원전의 안전성에 대해서 명쾌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후쿠시마처럼 노심이 녹는 중대 사고의 확률이나 피해액에 대한 수많은 연구들은 저마다 천차만별의 수치들을 제시하고 있다. 게다가 사람들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환경에 대한 태도, 위험기피 정도 등에 따라서 원전에 대한 입장이 다르다. 결국 제한된 정보하에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최선의 선택을 내리는 것은 정치의 몫이다. 정치가 싫다고 다른 곳에서 답을 찾을 수는 없고, 정치를 바로잡는 것은 국민의 몫이다.


김영산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