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21세기 비틀스이자 글로벌 팝 센세이션이다." 2018년 BTS가 영국 음악의 심장부인 O2 아레나 공연을 매진시켰을 때, BBC 방송이 던진 찬사다. 그리고 O2 아레나를 가득 채운 관객들이 한국어로 된 BTS 노래들을 '떼창'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놀라운 사건도 이후 일어난 일들에 비하면 시시하다. 이듬해 BTS는 록 밴드 퀸이 '라이브 에이드' 공연을 펼쳤던 전설의 무대 웸블리 스타디움으로 진격했다. 7만 석이 넘는 스타디움의 이틀치 티켓이 90분 만에 매진됐다.
2020년엔 난공불락처럼 보이던 빌보드 핫100 1위에 '다이너마이트'(Dynamite)가 마침내 오르는 새 역사를 썼다. 1년 뒤 발표한 '버터'(Butter)는 빌보드 핫100 1위를 무려 10주 동안 지켰다. 거짓말 같은 일들의 연속이었다. 돌이켜보면 유엔에서의 세 차례 연설은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콧대 높은 그래미 시상식에서 축하 공연을 펼치고, 최근엔 백악관에까지 초청받아 현지 기자단을 술렁이게 했다. 10년 전 누군가가 가까운 미래에 이런 일들이 일어날 거라고 얘기했다면 비웃음만 샀을 것이다. 높이로만 따진다면, BTS가 이룰 꿈은 이제 더 이상 없어 보인다.
그런 BTS가 최근 '번아웃'을 호소하며 팀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리더 RM은 "K팝 아이돌 시스템이 사람을 숙성하게 놔두지 않는다"며 "계속 뭔가를 찍어야 하니까 내가 성장할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다이너마이트'까지는 우리 팀이 내 손 위에 있었던 느낌인데 그 뒤에 '버터'랑 '퍼미션 투 댄스'(Permission To Dance)부터는 우리가 어떤 팀인지 잘 모르겠더라"며 정체성 혼란을 고백했다.
BTS는 다른 아이돌과 달리 스스로 곡을 만들고 프로듀싱까지 하는, 뮤지션 자의식이 뚜렷한 그룹이다. 그런 그들이 외국인 작사, 작곡가 조력으로 가장 높은 성공의 자리에 올랐을 때, 그들은 그 성공을 회의했다. 그리고 성찰과 축적의 시간을 갖기 위해 팀 활동 일시 중단이라는 강수를 던졌다. 폭주하는 성공의 열차에서 뛰어내리기 위해선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BTS의 이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성공과 명성이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그게 음악의 본질이 될 수 없다. 음악은 무엇보다 먼저 나를 구원하는 행위다. 세상을 다 얻어도 스스로 충만하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세계적 록 밴드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 '더 월'(The Wall)은 실존과 소외에 대한 철학적 질문들로 가득 찬 걸작이다. 앨범을 주도한 베이시스트 로저 워터스는 스타디움 공연 때 맨 앞줄에서 괴성을 지르던 관객에게 침을 뱉은 적이 있다. 그때 그는 무대와 객석 사이에 벽을 느꼈으며,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충격을 받았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그 후 이 벽의 문제의식을 존재와 세계로 확장해, 이제는 전설이 된 명반을 내놨다. 거대한 성공의 순간에 찾아온 환멸이 새로운 음악적 도약의 바탕이 됐다.
BTS 역시 지금의 멈춤이 훗날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모든 삶은 마지막에 죽음이라는 거대한 실패를 만나게 돼 있다. 찬란한 성공도 거기로 향하는 여정 위의 사소한 에피소드일 뿐이다. 성공을 위해 음악적 자유를 절대 포기하지 말 것, 자유와 늘 한 쌍인 고독을 언제나 곁에 둘 것, 그리고 좌절의 시간이 오더라도 끝까지 자신을 사랑할 것. BTS가 그럴 수 있길 바란다. 음악은 산업이기 이전에 '소우주'인 우리들 영혼의 양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