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인프라 투자, 과하면 지방소멸 가속화할 수도

입력
2022.06.28 04:30
14면

편집자주

※서민들에게 도시는 살기도(live), 사기도(buy) 어려운 곳이 되고 있습니다. 부동산은 치솟고 거주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집니다. 이런 불평등과 모순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도시 전문가의 눈으로 도시를 둘러싼 여러 이슈를 하나씩 짚어보려 합니다. 주택과 부동산 정책, 도시계획을 전공한 김진유 경기대 교수가 <한국일보>에 3주에 한 번씩 연재합니다.


<39> 고속도로, 공항에 대한 지나친 기대 버려야

며칠 전 한 토론 프로그램에서 지방 대도시의 시장 당선인이 공항의 중요성을 강조한 일이 있었다. 과거에는 고속도로가 지방도시 발전에 가장 중요했다면, 이제는 하늘길이 뚫려야 살 수 있으니 공항이 중요하다는 게 골자였다. 아마도 인적, 물적 교류가 활발히 일어나야 지방도시도 활성화될 수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주장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일리가 있다. 고속도로가 지방도시 산업발전에 결정적 기여를 한 점, KTX가 도시 간 인적 교류를 획기적으로 높인 점을 본다면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고속교통시설이 오히려 중소도시의 대도시 종속성을 심화시킬 수도 있다. 그러므로 새로운 교통인프라가 마냥 긍정적일 것이라는 기대는 위험하다.

고속도로와 고속철도

1968년 개통한 경부고속도로는 우리나라 국토와 도시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함으로써 이른바 압축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10시간 이상 걸리던 서울-부산 간의 이동시간을 4시간대로 단축시키며 전 국토를 일일생활권으로 만들었다. 물류수송의 신속성이 높아짐으로써 부산항을 비롯한 주요 항구의 수출입 물량이 획기적으로 증가했고, 지방도시의 산업발전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물류뿐 아니라 여객수송의 효율성도 높아져 출장이나 관광이 활성화돼 국가 경제성장의 열매가 지방으로 확산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04년 첫 운행을 시작한 KTX 역시 전국 주요 도시 간 공간적 한계를 무력화시키며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웬만하면 하룻밤 묵어야 했던 지방 출장은 옛말이 됐고, 가장 거리가 먼 서울과 부산도 여유로운 당일 출장코스로 바뀌었다. 당연히 서울과 지방도시 간의 고속철을 이용한 인적 교류는 크게 확대되었다. KTX와 SRT가 제공하는 여객수송통계를 보면 고속철도 이용객은 2004년 1,990만 명에서 2019년 5,680만 명으로 15년 동안 350% 증가하여 가히 폭발적이었다.

세종시나 혁신도시의 성장에도 고속철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만약 일반철도나 고속도로만 있었다면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을 추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대통령실이나 국회 등 여전히 수도권에 있는 주요 기관과의 교류가 필수적인 상황에서 고속철은 출장으로 인한 시간소요를 크게 줄여주었다. 이런 측면에서 KTX와 SRT가 지방도시의 발전에 기여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경쟁력 갉아먹는 지방공항


잘 알려진 대로 상당수의 지방공항은 계륵 중의 계륵이다. 인천공항을 제외한 14개 공항 중 김포, 김해, 제주, 대구공항 등 4개를 뺀 10개 공항은 만성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코로나19의 영향을 받기 전인 2019년을 기준으로 보더라도 100억 원 이상의 적자를 낸 공항이 5개나 되며 총 적자액은 887억 원에 이른다. 코로나 사태로 항공수요가 급감한 2020년에는 제주공항을 제외한 13개 공항이 모두 적자를 기록했으며 총 손실액이 1000억 원을 넘었다.

지방공항이 사업상 적자를 내더라도 시민들에게 충분한 편익을 가져다 준다면 존재가치가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공항의 적자는 다른 교통수단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져서 나타난 절대적 수요부족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청주까지 고속버스는 1시간 30분이 소요되는데 비행기를 이용하면 2시간이 걸린다. 공항 가는 시간과 수속에 걸리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둘의 차이는 더 커지니 완전히 비효율적인 수단인 것이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굳이 비행기로 이동할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그렇다고 해외여행 수요가 충분한 것도 아니다. 국내공항 중 상당수는 빨리 문을 닫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공항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 참 딱한 노릇이다.

고속철의 빨대효과

빨대효과(Straw Effect)란 고속교통시설이 생김으로써 작은 도시의 기능이 큰 도시에 종속되는 현상을 말한다. 음료수병에 빨대를 꽂아서 쭉 빨아들이듯이 대도시가 고속철도나 고속도로라는 파이프를 통해 중소도시의 경제활동을 흡수한다는 것이다. 2000년대 중반 일본학자들이 처음 정리한 이 용어는 국제적으로 널리 쓰이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고속철의 개통 이후 종종 등장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속철의 빨대효과는 미미하다는 평가가 일반적인데 몇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우리나라 고속철 정차역은 일본과 달리 대부분 대도시에 있어 문화나 쇼핑시설의 수준이 서울과 비교할 때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관광이나 쇼핑목적의 이용객 비중이 낮아 지방상권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인구 측면에서도 수도권 접근성이 좋아져 오히려 지방으로의 인구이동을 촉진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만약 고속철로 인한 서울과 지방대도시 간 빨대효과가 없다면 왜 수도권으로의 인구 집중은 계속되는 것일까. 혁신도시 추진으로 한동안 잠잠했던 수도권으로의 전입이 최근 들어 다시 증가하는 것은 단순히 일자리 차원일까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조금 더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고속철이 가져온 통행의 증대는 각 도시의 일자리, 잠자리, 놀자리 등 모든 면에서 도시 간 비교를 보다 쉽게 만들었고, 주거지 선택의 폭도 넓혔을 것이다. 결국 고속철을 통해 통근 통학거리가 확대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고속철의 빨대효과에 대해서는 조금 더 살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국지적 빨대효과

사실 더 주의 깊게 관찰하고 대비해야 할 문제는 국지적으로 나타나는 빨대효과다. 일본의 경우를 보더라도 고속철(신칸센) 개통에 의한 빨대효과는 대도시 간보다는 대도시와 중소도시 간에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다소 다르긴 하지만 우리나라도 대도시와 주변 중소도시 간 고속도로 개통으로 인한 국지적 빨대효과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2010년 말 개통한 도시고속화도로인 ‘거가대교’는 2시간 10분 걸리던 부산-거제도를 50분으로 단축했다. 접근성의 획기적인 향상은 주거지의 외곽 확산과 더불어 경제활동의 대도시 종속성도 심화시켰다. 2014년 말 조선업의 불황이 닥치기 전까지 거제시의 인구는 지속적으로 증가했지만 문화, 여가, 쇼핑의 부산 의존도는 더 커졌다. 국토연구원의 분석에 의하면 2010년에는 부산의 쇼핑영향권에 들어오지 않았던 거제시가 거가대교 개통 이후인 2017년에는 직접적인 영향권에 포함됐다.

부울경메가시티가 추진되면 앞으로도 도시 간 고속교통망이 지속적으로 확충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광역도시권 내에서의 국지적 빨대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인구는 고속도로를 따라 주변 중소도시로 이동할 수도 있겠지만, 업무, 문화, 교육, 쇼핑 등 전 분야에서 부산의 영향권은 더욱 확대될 공산이 크다. 최악의 경우 주변 도시들의 부산 종속성은 더 커지고, 장거리 통행이 일상화되면서 더 많은 시간을 길에서 보내야 할 수도 있다.



고속교통인프라 효과, 과신하면 위험

국가경제 및 국토의 균형 발전을 위해서 고속 교통인프라의 확충은 필요불가결하다. 인적, 물적 자원의 원활한 흐름은 효율성을 향상시켜 결과적으로 큰 편익을 만들어낸다. 만약 경부고속도로가 없었거나 늦게 만들어졌다면 우리나라의 눈부신 경제발전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나친 고속 교통인프라의 확충은 도시 간 의존성을 높이고 자원을 낭비해 지역경제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고속교통시설로 인한 도시 간 교류 증진은 결국 도시환경에 대한 비교 기회를 제공하고 더 나은 도시에서 일하고 놀고 살고 싶어하는 마음을 키우게 된다. 그러므로 만약 도시 자체의 경쟁력 향상 전략이 부족한 상태에서 주변 대도시와의 접근성만 높이게 되면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 작은 도시의 자족성이 약화되고 활력이 떨어지면 결국 지역소멸이 가속화될 수도 있다.

또한 공항과 같이 초기 투자비용이 막대하고 일정거리 이상 돼야 그 효용이 생기는 교통인프라를 무분별하게 건설하면 만성적인 적자로 인해 지역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결과적으로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그러므로 중심도시와의 고속교통망 확충에 앞서 각 도시의 자생력을 키울 수 있는 전략이 선행돼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