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지 퇴행 美판결, 서방 정상들은 실명 비판 vs 아시아는 '침묵'

입력
2022.06.26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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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프랑스·독일 등 美 우방 한목소리 규탄
"자기결정권 박탈…위협받는 여성권리 지켜야"
100여개 국제 보건기구도 비판... 
"수술 불법화로 임신중지 못 막는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임신중지(낙태)권 보장 판례('로 대 웨이드' 판례) 폐기 결정에 대해 주요국 정상과 국제기구가 '여성 인권·권한 후퇴'라며 공개 비판했다. 미국의 우방 국가 정상들도 참지 않았다. 이번 판결이 전 세계적 백래시(사회·정치 진보에 대한 반발) 확산으로 번질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정상들이 특정 국가의 특정 판결에 대해 이례적으로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美 동맹국 정상들 "여성 자기결정권 박탈 안 돼" 공개 비판

25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보리슨 존슨 영국 총리와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전날 미 연방대법원의 판결 직후 개탄 메시지를 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공식 입장을 내기도 전이었다.

존슨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나는 이번 판결을 큰 후퇴로 생각한다"며 "전 세계 사람들의 사고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트뤼도 총리는 트위터에서 "정부, 정치인 혹은 남성이 '여성이 그들의 몸과 관련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말해선 안 된다"고 했다.

독일, 프랑스 정상도 나섰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트위터에서 "임신중지는 모든 여성의 기본 권리로, 반드시 보호돼야 한다"고 썼고,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독일을 포함해 세상의 수많은 곳에서 여성의 권리가 위협받고 있다. 우리는 이를 단호하게 지켜나가야 한다"고 했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성명을 내고 "(미국의 판결은)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을 내릴 기본권을 박탈한 것이다. 개인적 신념으로 다른 이의 자기 결정권을 빼앗아선 안 된다"며 미국의 보수파 대법관들을 규탄했다.

100여개 국제 보건기구 공동 규탄 "임신부 낙인찍기"

이 같은 공개 비판은 두 가지 면에서 이례적이다. 우선 ①영국 등은 미국의 핵심 동맹국들이다. ②국가 최고지도자가 다른 국가의 문제에 입장을 내는 것은 '내정 간섭'으로 비칠 수 있는 탓에 국제사회에서 금기로 통한다. 그럼에도 한목소리가 나온 건 이번 판결이 국경을 뛰어넘어 전 세계 여성·소수자 인권에 미칠 악영향이 그 만큼 크다는 뜻이다. 보건 관련 국제기구들도 "임신중지 수술의 불법화는 임신부를 낙인찍고 건강을 위협할 뿐, 수술 자체를 막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세계산부인과연수생협회 등 100개가 넘는 국제 보건기구는 공동 성명서를 내고 "의료서비스 제공에 전념하는 기관으로서 우리는 임신중지 권한을 제한하는 법률이 임신중지 수술 수요를 줄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오히려 의료서비스 접근의 불평등을 키우고 임신중지 시술을 범죄화할 환경을 만들어 임신부를 위험에 빠트린다"고 경고했다. 유엔인구기금(UNFPA)과 세계보건기구(WHO)도 성명에서 "안전한 임신중지 수술권 박탈은 더 많은 여성을 안전 문제에 노출시킬 것"이라며 우려했다.

교황청은 "환영"... 아시아 국가들은 "침묵"

반면 교황청과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 대법원의 결정을 환영하거나 침묵했다. 교리상 임신중지에 반대하는 교황청은 성명을 통해 "오랜 민주주의 전통을 지닌 큰 나라가 이 문제에서 입장을 바꿨다는 것은 전 세계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며 판결을 반겼다.

한국을 비롯해 일본, 중국 등 아시아 국가 정부는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일본은 현재 임신 22주까지 임신중지를 허용하고 있고, 중국도 '부녀자권익보장법'에서 출산하지 않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한국은 2019년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이후 대체 입법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장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