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목숨을 던지게 하는, 이 타살들

입력
2022.06.27 04:30
26면

지난 3월 말, 정신질환자와 발달장애인의 집을 찾아다니기 시작한 후배 기자들이 말했다. 다들 집안이 너무 엉망이고, 허름하고, 반지하도 많고 외진 곳에 있다고.

취재 내용을 살피면서 ‘지금 당장 죽는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겠다’ 싶었다. 그 정도로 방치됐다. 실제 폐암에 걸려 치료감호소에서 출소한 조현병 환자 오한수(58·가명)씨가 기자들과 처음 만난 지 고작 17일 만에 사망했다. 그 소식을 듣고 나도 꽤 오래 충격을 받았다. 한수씨 모자가 받을 수 있는 복지지원을 먼저 알아보느라, 병원에 데려가는 걸 우선하지 못했던 우리 잘못 같아 후회도 컸다.

그를 처음 만나고 온 기자들은 “한수씨가 믹스커피도 타줬다”고 했다. 난 다음에 또 그런 대접을 받으면, 그 커피잔도 사진을 찍어놓으라고 말했다. 평생을 조현병과 싸워온 이가 손님에게 대접한 친절한 커피 사진을 기사에 넣고 싶었다. 어리석게도 그게 가능할 줄 알았다.

한수씨 모자의 사연을 담은 기사의 댓글은 슬픔과 다정한 애도로 가득했다. 그러나 7세 정신연령의 임동균(23·가명)씨가 수갑을 차고 2년 6개월을 구치소와 치료감호소에 구금돼 자해에 이른 사연을 담은 기사의 포털 댓글은 정반대였다. ‘무한정 가두고 격리하라’는 공격들. 장애인은 살아있으면 멸시받고, 죽어야 애도받는다.

이번 기사들이 중범죄자들을 다룬 것도 아니다. 조현병이나 지적장애 때문에 행인을 위협하거나 붙잡아 넘어뜨린, 결과적으로 큰 피해는 없었던, 형량도 집행유예나 벌금 100만 원인 사안이다. 이들은 형량 이상을 치렀다.

누군가 울분을 토했다. “발달장애 아이를 둔 아빠입니다. 댓글 수준을 보니 화를 넘어 눈물이 납니다. 이런 아이를 낳은 부모가 죄인이니 결자해지, 극단선택 아니면 이민밖에 답이 없나봅니다.” “동생이 자폐증인데 한국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른 게 없어요. 그래서 미국 이민을 왔는데 여기는 장애에 대해 심한 편견이 없어서 좋은 것 같아요. 한국은 경제 발전만 중요시하는 곳이라, 보이는 것만 중요시하는 나라라 어쩔 수 없어요.”

최근 뉴스들만 나열해도 원인과 결과가 들어맞는다. 발달장애인 가족들이 잇단 극단 선택을 하고 있다. 한국은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살률 1위를 기록했다. 정부의 24시간 지원체계 마련을 요구하며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삭발투쟁을 한다. 정부는 이런 요구엔 응답하지 않고 대기업의 법인세와 다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를 비롯한 광범위한 감세정책을 발표했다. 복지 예산이 영향을 받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야당이 돼서야 발달·중증장애인 참사 분향소를 찾아 반성을 했다.

이 몰염치의 원동력은 상당부분 국민의 이기심과 혐오정서에 기반한다. 국립정신건강센터에 따르면, ‘정신질환자 이용 시설이 우리 동네에 들어와도 받아들일 수 있다’에 동의한 비율은 39%(2019년 기준·보통 41.7%, 반대 19.4%)에 불과하다. 장애인 이동권 시위에 대한 반응은 또 어떤가.

살인의 종류 중에 ‘부작위(不作爲)에 의한 살인’이 있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서 죽게 만드는 것. 조현병 환자가 방치돼 암 치료를 못 받고 사망하고, 발달장애인 가족의 투신이 흔한 2022년 한국의 모습이다. 경제규모 10위의 국가 말이다.

이진희 어젠다기획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