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 위기 키우는 고환율… 물가 인상·무역 적자 부채질

입력
2022.06.2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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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달러 환율 1,350원 갈 수도"
고환율로 경제 악순환 가능성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처음으로 1,300원의 벽을 뚫은 원·달러 환율이 한국 경제에 복합 위기를 몰고 오고 있다. 치솟은 환율로 물가 급등세와 무역수지 적자, 해외자본 이탈이 가속화하면서 실물 경제와 금융의 동반 침체를 부채질하는 모양새다. 총력 대응에 나선 정부 대책도 약발이 크지 않아 한국 경제가 ‘환율 충격’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 구두개입 효과 미비...시장 "환율 1,350원까지 오른다"

24일 외환시장에 따르면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날(1,301.8원)보다 3.6원 내린 1,298.2원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 1,301원을 넘겼다가 소폭 하락했지만 여전히 1,300원 선을 위협하고 있다. “필요시 시장 안정 노력을 하겠다”던 전날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구두 개입에도 환율 상승세는 쉽게 진정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시장에선 미국의 공격적인 긴축 등 대외 불확실성이 여전한 만큼 원·달러 환율이 1,350원까지 오를 거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전규연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원화 강세를 이끌 요인이 보이지 않는다”며 “하반기 환율 상단을 1,350원까지 열어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과거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을 웃돌았던 때는 모두 경제 위기 당시였다. 1997년 외환 위기 때 환율이 2,000원 가까이 치솟았고, 일본의 제로금리 정책으로 엔저 여파가 컸던 2001~2002년과 글로벌 금융 위기(2008∼2009년) 당시에도 1,300원의 벽을 넘겼다.

이번에 다시 환율이 1,300원을 돌파한 건 그만큼 한국 경제가 위기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는 뜻이다. “복합 위기가 시작됐다”(추 부총리), “미증유의 ‘퍼펙트 스톰(초대형 복합 위기)'이 밀려올 수 있다”(이복현 금융감독원장)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물가 뛰고 수출엔 악영향 우려

고환율은 가뜩이나 높은 물가 상승 압력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한국 경제에 상당한 부담이다. 이미 고환율 여파로 지난달 생산자물가지수는 5개월째 상승하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상승률(5.4%) 역시 2008년 8월(5.6%) 이후 13년 9개월 만에 가장 크게 올랐다. 환율이 1%포인트 뛰면 생산자물가는 0.2%포인트, 소비자물가는 0.1%포인트 동반 상승하는 것으로 추산된 만큼 향후 물가는 더 오를 공산이 크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6~7월 물가상승률이 5월보다 더 높아질 가능성이 커졌다”고 전망했다. 급격한 물가 상승은 소비 침체를 불러오고, 기준금리 인상으로 이어져 경기 하강 속도를 가속화할 수 있다.

환율 상승으로 수입액은 증가한 반면, 수출 증가세는 둔화해 한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 온 수출마저 흔들리고 있다. 연초부터 이달 20일까지 누적 무역수지는 154억6,900만 달러 적자에 달한다. 이 기간 평균 원·달러 환율은 1,229.6원. 약 132억 달러 흑자를 기록한 1년 전 같은 기간(1,117.1원)보다 10% 올랐다.

방기선 기재부 1차관은 이날 비상경제차관회의에서 “조업 일수 감소와 화물연대 파업 등 일시적 요인까지 겹쳐 6월 무역적자 폭이 다소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무역수지가 14년 만에 적자 전환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뜻이다.

실물 경제와 금융시장의 동반 침체는 대규모 자본 유출로 이어져 원화 가치를 추가로 떨어트릴 수 있다. 그러면 물가 상승 압력이 더욱 커지고, 이는 경제 성장에 또다시 악영향을 미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해외 경기가 좋지 않아 수출이 좋아질 길은 안 보이는데 고환율·고물가로 경제적 어려움은 가중되는 상황”이라며 “스태그플레이션에 이미 진입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 변태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