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 수밖에 없다' 표현의 정착

입력
2022.06.2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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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적으로 표현하기 망설여질 때 '-는 것 같다, -을 수 있다, -로 보인다' 등과 같이 고정된 표현으로 문장을 끝맺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표현들은 명제 내용에 대한 판단을 완화하거나 유보할 때 쓰는 글쓰기 전략이다. 반대로 주장을 강화하는 전략으로는 '-을 수밖에 없다'를 사용한다.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이는 '-을 수밖에 없다'는 최근 100년이 흐르는 동안 특이한 형태 변화를 겪었다. '-을 수밖에 없다'는 19세기와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을 수밖에'의 순서가 뒤바뀐 '-을 밖에 수(가) 없다'로 쓰였다. 19세기의 '열녀춘향수절가(완서계서포 84장본)'에 '불가불 이벼리 될 박그 수 업다'와 '독립신문(1898.2.22.)'에 '다 줄 밧긔 슈가 업슨즉'처럼 '-을 밖에 수(가) 없다'가 사용된 예가 보인다. '-을 밖에 수(가) 없다'는 점차 쓰임이 줄기 시작해 1950년대 신문까지 간혹 보이나 그 이후에는 사용된 사례를 찾기 어렵다. '-을 밖에 수 없다'에서 줄어든 것으로 추정되는 종결어미 '-을밖에'가 현대국어에 잔존형으로 남아 있다.

이런 변화의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적으로 '밖'은 '에'와 결합하여 '밖'이 원래 가진 공간적 의미를 상실하고 추상적 의미인 '한정'을 나타내는 보조사로 변하게 되었다. 보조사로 변한 '밖에'는 관형형과 어울리지 않고 의존명사 '수'와 결합한 형태인 '-을 수밖에 없다'로 쓰임이 굳어져 정착된 것이다. 단어는 일반적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뜻이 확장되거나 축소되는 변화를 겪는데 일부는 조사나 어미와 같은 문법 기능을 담당하는 쪽으로 바뀌기도 한다. 언어 변화의 다변성을 보여줘 흥미롭다.

황용주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