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 산수화의 특징을 보여주는 ‘독서당계회도(讀書堂契會圖)’가 한국에 돌아왔다. 일본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유물이 지난 3월 미국의 미술품 경매에 나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매입한 것이다. 학계에서는 적어도 1970년대 후반부터 국외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지만 국내에 실물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22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독서당계회도를 공개하고 다음 달 7일부터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한다고 밝혔다. 독서당계회도는 비단에 그려진 수묵채색화로 중종이 신축한 학문 연구기관이었던 ‘독서당’을 배경으로 문인들이 친목 모임인 ‘계회’를 여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중종 연간인 1516년부터 1530년 사이에 사가독서(賜暇讀書)에 참여했던 20, 30대 관료들의 모임을 기념해 제작됐다. 사가독서는 젊고 유능한 문신들을 선발해 휴가를 주고 공무 대신 학문에 전념하도록 한 인재양성 제도다.
작품이 해외로 반출된 경위는 파악되지 않았으나 일본 교토국립박물관장을 지냈던 간다 기이치로가 소장했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다. 그가 사망한 후 다른 소장가가 유족으로부터 작품을 입수해 지난 3월 크리스티 경매에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낙찰가를 공개하지 않았으나 크리스티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낙찰가는 69만3,000달러다.
그림의 상단에는 제목(독서당계회도)이 전서체로 쓰여 있고 중단의 화면에는 응봉(매봉산)을 중심으로 현재의 서울 성동구 옥수동 일대가 묘사돼 있다. 중앙에는 강변의 풍경과 누각이 보이는데 강변에서 산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면 안개에 가려서 지붕만 보이는 독서당이 나타난다. 그 아래로 한강 동호(東湖) 일대에서 관료들이 뱃놀이를 하고 있다. 하단에는 백운동서원을 세운 주세붕(1495~1554년), 규암집을 저술한 송인수(1499~1547년) 등 참석자 12인의 호와 이름, 본관, 생년, 사가독서한 시기, 과거급제 연도, 계회 당시의 품계와 관직 등이 기재돼 있다. 1531년과 1532년에 새로운 관직에 임명된 참석자들이 1531년에 지냈던 관직명이 기록돼 있는 점에서 해당 작품은 1531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날 공개된 독서당계회도는 현재까지 실물이 전해지는 16세기 독서당계회도 3점 가운데 한 점이다. 문화재청은 이 작품이 실경산수 계회도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됐고, 제작 연도를 파악할 수 있으며 현존하는 작품이 드문 조선 초기 산수화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봉우리 위쪽에 청색 안료가 칠해져 있는 점도 특징이다. 조선시대 계회도 자체는 현재까지 180여 점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중 19점이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됐다. 박은순 덕성여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이른 시기의 작품에 저렇게 청색 안료가 칠해진 경우가 거의 없다. 회화적 표현의 수준이 상당히 높고 특이한 부분도 있어서 여러 면에서 (현존하는 계회도 가운데) 대표작으로 삼을 만한 요건을 갖췄다”고 밝혔다. 그는 “관료들이 공무하는 시간에 관복을 입고 계회를 하고 있는 것은 공적인 연회라는 것”이라면서 “추정컨대 굉장히 수준이 높은 이런 작품은 화원이 파견돼 그렸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