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협정을 시작으로 각국의 탄소중립 선언이 이어지고, 세계 곳곳에서 기후이상 징후가 발생하면서 지구적 대응의 시급성이 더욱 증대되는 상황이다. 게다가 미중 간의 파워게임과 우크라이나 사태는 급격한 유가상승으로 초유의 인플레 현상을 초래하며 세계 경제를 위기로 몰고 있다. 따라서 미래의 탄소중립을 준비해야 하는 세계가 현재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산유국에 증산을 요청해야 하는 딜레마가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신구의 갈등을 대비하고자 등장했던 구호가 '정의로운 전환'이다. 이는 탄소중립이 '비가역적'이므로 전환과정 속 산업, 노동자, 주민 등의 부당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나 작금의 상황은 '정의로운 전환'이 기존 에너지 산업의 선제적 퇴출을 의미하여 과연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 고민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중후장대 제조업 국가는 선퇴출 후대응의 방식이 아닌 현 체제에서 확보한 자금으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예를 들면 현재 에너지산업이 마련해주는 에너지특별회계와 전력산업기반기금으로 미래에 투자하고 있는 것이 현실로, 단절적 전환이 아닌 '조화로운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조화로운 전환의 핵심은 현 체제에서 비롯된 자금으로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다. 원전과 신재생에너지에 기반한 저탄소 에너지체제와 이에 기반한 전기차, 수소트럭 주도와 석유화학 등 전통 제조업의 혁신을 도모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상당기간 전통과 혁신을 꾸려가야 하므로 돈이 더 필요한 것이다. 이를 관철시킬 해법은 민간의 과감한 혁신투자이다.
이를 위해 규제제도의 고도화가 필요하다. 탄소중립은 그 자체가 규제이므로 경쟁과 자유화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우선 투자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원스톱인허가제도와 같은 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제도개선이 시급하고, 투자유도를 위한 국내 혁신적인 수요 창출을 위해 과감한 기술규제도 필요하다.
규제 외에도 혁신적인 투자를 저해하는 장애요인들이 존재한다. 그중 대표적 난제가 입지문제다. 사용후핵연료처분장, 해상풍력, 수소스테이션 등은 새로운 입지가 필수적이나 주민 수용성이라는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 면에서 최근 논의 중인 에너지슈퍼스테이션은 좋은 해법이다. 전국 어디에나 존재하는 주유소나 LPG충전소는 태양광·연료전지 등 분산발전과 전기차 등 친환경차 충전까지 가능한 친환경 분산형 에너지플랫폼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는 기존의 입지를 최대한 활용하는 '지혜로운 전환'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미래의 탄소중립과 현재의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존체제를 먼저 폐기하는 '정의로운 전환' 대신, 제조업 지위를 유지하면서도 국익에 기반한 조화롭고 지혜로운 '전략적인 전환'이 우선돼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