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셴룽(70) 싱가포르 총리의 후계자로 낙점된 로런스 웡(49) 부총리가 자신의 존재감을 처음으로 드러냈다. 데뷔 카드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확산 중인 물가상승 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대규모 재정 지원책이다. "싱가포르는 높은 물가를 이겨낼 충분한 자금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한 그는 이번 지원책 시행을 기점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더 높여간다는 계획이다.
22일 스트레이츠타임스 등 현지매체에 따르면, 웡 부총리는 전날 "코로나19로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된 상태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에너지와 식량 가격이 급등했다"며 "몇 달 이내에 현 상황이 호전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대대적인 지원책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지원책 규모는 15억 싱가포르달러(한화 1조4,019억 원)에 이른다. 싱가포르는 지난 4월 최근 10년 만의 최고치인 3.3%의 물가상승률을 기록한 바 있다.
웡 부총리의 물가상승 대응은 경제적 약자에 대한 재정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는 우선 저소득층·취약계층 지원 프로그램(ComCare)을 강화, 가구당 640달러의 현금을 지원한다. 또 말레이시아의 닭고기 수출 금지로 피해를 입은 관련 농가의 세금을 면제하고, 유가 상승으로 수익이 줄어든 택시 및 렌터카 운전자들에게 1인당 150달러를 지급하기로 했다. 이외에도 그는 전 국민에게 생필품 및 세금 납부를 위한 300달러의 바우처를 나눠주고, 기업들엔 에너지 보조금도 지급할 방침이다.
싱가포르 '차세대 정치그룹(4G)'의 리더인 웡은 지난 6일 재무장관에서 부총리로 전격 승진했다. 지난 4월 19년째 장기집권 중인 리 총리의 후계자로 지명된 지 두 달 만에 본격적인 '대권 수업'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그는 싱가포르의 중장기 현안에 대응하는 '총리실 전략그룹'의 수장까지 맡는 등 정부 각 부처에 대한 장악력을 점진적으로 확보하고 있다. 현지에선 웡 부총리의 권력 이양 시기를 내년 초로 예상되는 싱가포르 총선 전후로 전망하고 있다.
1965년 독립한 싱가포르는 현 여당 인민행동당(PAP) 지도부 논의나 소속 의원들의 추인을 통해 차기 총리를 지명·확정한다. 싱가포르의 역대 총리는 단 세 명으로, 모두 PAP 소속이다. 국부(國父) 리콴유 초대 총리가 1990년까지, 후임 고촉동 총리는 2004년까지 집권했다. 이후 리콴유의 장남인 리셴룽 총리가 정권을 이어받아 현재까지 내각을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