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가 '니로 EV' 신형 모델에 '닝더스다이(寧德時代·CATL)'의 리튬이온 배터리를 장착한 것으로 확인됐다. 기아가 내수용 차량에 중국산 배터리를 장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으로 수출용 모델에도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국내 배터리 업계에선 한국 시장에서는 중국산 배터리를 찾아볼 수 없었던 터라 기아의 이번 선택이 중국 경쟁 회사 제품이 한국 시장에 본격 진출하는 신호탄이 되는 것 아니냐며 긴장하고 있다. 게다가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가 탑재될 것으로 알고 계약했던 일부 소비자들은 "속았다", "취소한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기아는 7일 출시한 준중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신형 니로 EV(프로젝트명 SG2)에 중국 CATL의 64.8㎾h 용량의 삼원계(NCM·니켈코발트망간) 리튬이온 배터리를 넣었다. 구형 니로 EV는 SK이노베이션(현 SK온) 배터리가 들어가 있다.
당초 기아는 신형 니로 EV 개발 단계에서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를 탑재할 계획이었다. 니로 EV 사전계약 안내책자에도 공급사가 명시되지 않았지만, LG에너지솔루션의 주력 제품인 '리튬이온폴리머' 배터리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실제 들어간 CATL의 NCM 배터리는 '리튬이온' 배터리다. 성능 상 큰 차이는 없지만, 규격이 다른 것이다. 게다가 리튬인산철(LPF) 배터리를 주로 만든 CATL이 NCM 배터리를 한 차종에 대량 생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품질이나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셈이다.
CATL 배터리 탑재로 니로 EV의 주행 성능에 대한 걱정도 쏟아지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이나 SK온의 경우 에너지 밀도를 높이기 위해 니켈 비중을 높인 'NCM811(니켈8:코발트1:망간1)' 배터리를 주로 공급한다. 하지만 니로 EV에 장착된 CATL 배터리는 코발트 비중이 높은 '구형 배터리'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이 코발트' 배터리는 저온 상태에서 충전 속도를 높이는 장점이 있지만, 에너지 밀도가 낮아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대해 기아 관계자는 "CATL 배터리가 (기아의) 내부 품질 기준을 충족했고, 공급 여력도 충분하다고 판단해서 국내산 배터리 대신 선택했다"며 "배터리도 반도체 못지않게 수급이 어려운 상황이라 공급선 다변화 차원이라는 이유도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현대차그룹과 기아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원가절감'도 중요한 이유로 꼽힌다. 니로 EV 공급 업체 선정 당시 CATL이 경쟁사보다 훨씬 낮은 금액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기아 관계자는 "기밀 사항이라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답했다.
국내 배터리 업계에선 니로 EV를 시작으로 중국산 배터리가 한국으로 건너오는 것 아닌가 걱정하고 있다. 유럽에 이어 국내에서도 중국 업체들과 경쟁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기 때문이다. 에너지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4월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CATL이 점유율 33.7%로 1위를 차지했다. 이는 2위인 LG에너지솔루션(14.9%), 5위 SK온(7.0%), 7위 삼성SDI(4.0%)를 모두 합친 것보다 높은 점유율이다.
국내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중국산 배터리는 '미중 무역전쟁' 이후 미국 시장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지만 자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며 "특히 테슬라에 LFP 배터리를 공급하면서 국내 업체들과 점유율 차이가 크게 벌어졌는데 한국 시장까지 진출하면 그 격차는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니로 EV가 CATL 배터리를 탑재한 것 아니냐는 소문이 돌면서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혼란이 커지고 있다. LG배터리가 들어간 줄 알고 구매 계약을 했다는 이들은 "기아에 속았다"고 분노했다. 기아 측에서 중국 산 배터리 장착 여부를 사전에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