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포퓰리즘을 깨는 법

입력
2022.06.22 00:00
27면

유튜브, 페이스북 등에서 유통되는 지식과 정보들이 우리 마음을 분노의 소용돌이로 몰아넣는다. 이런 활동이 가상공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정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문제이다. 누구나 인터넷 검색을 하면, 수십 년을 연구한 전문가를 뺨칠 만한 수준으로 여론을 좌우할 수 있다.

톰 니콜스의 책, The Death of Expertise(번역판 제목은 '전문가와 강적들')가 말해주듯 인터넷은 '전문가의 죽음'을 가져왔다. 박사 학위 취득까지 혹독한 과정을 거친 후, 평생 학문을 탐구하는 학자들의 존재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셈이다.

돌이켜보면, 검증되지 않은 지식이 판 칠 때마다 국가정책은 흔들려 왔다. 포퓰리즘이 강해질수록, 학자들의 입지는 줄어든다. 과학기술분야 전문가가 답을 줘야 하는 분야조차도 '다수가 원하는 바'에 따라 해결하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사람들 때문이다. 이런 물결 속에, 전문가의 목소리에 '니가 서울대 교수냐'는 식의 조롱이 댓글로 판을 치는 세상이 되었다.

소위 폴리페서들이 더 문제이다. 하지만, 대학에는 양심을 지키며 자신의 학문적 세계를 고수하며 연구에 몰입하는 학자들이 더 많다. 장관 제의를 거절하기도 하고, 언론 인터뷰도 사양하고, 학문에 정진하는 학자들이 훨씬 더 많다. 특히 2,000명이 넘는 서울대 교수 중에는 자존심과 양심으로 연구실을 지키는 이들이 넘쳐난다. 즉, 서울대는 살아있다.

상아탑에 갇혀있는 교수들이 철밥통이라고 생각하는 시각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학문의 세계 내부에서는 끊임없이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교수들은 수백 년 연구를 축적한 서구학자들과 전투를 하듯 살아남아야 하는 살벌한 세계에서 살고 있다.

새 정부는 이런 학술생태계가 정권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율적으로 활성화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대학운영의 자율과 교수연구의 자유가 관건이다. 그래야 대학이 진정한 지식을 창출할 수 있다. 나아가 학계에서 존경받는 사람들의 지식이 정책을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선거캠프에 참여한 교수들이 정부에 참여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

현재와 같이 정부 정책에 참여하는 교수를 정부가 선정하게 하면 폴리페서가 판을 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연구실만 지키는 진정한 전문가 교수들이 발굴되어, 연구와 정책결정을 병행할 수 있는 제도화가 필요하다. 예컨대 국무총리실의 국무조정실을 전문학자 중심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공무원들로 구성된 현재는 부처 간 갈등 조정을 주로 하고 있다. 여기에 관련 분야 최고 학자들 100명 정도를 참여토록 하자는 것이다. 인문사회과학뿐만 아니라, 자연과학, 공학, 의학계가 그 대표들을 추대토록 하는 것이다.

이들은 연구가 왕성한 국가인재들이므로, 특급 시간제 공무원 자격으로 주 1~2일 겸직하는 형태가 좋을 것이다. 쟁점이 되는 주요 정책사안에 대해 이들이 토론토록 하고, 꼭 필요한 정책에 대해서는 단순히 자문이 아니라 의결권을 주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한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정치와 대학의 분리가 이뤄져야 한다. 대학에 자율성을 주어 학문 자체의 자생력을 갖게 하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교수들을 들러리로 활용할수록, 폴리페서가 양산되고 그만큼 학문세계는 망가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